12일 오후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가케가와(掛川)시 신칸센 역에서 자동차로 20여분을 달려 오마에자키(御前崎)시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을 따라 걸어가자 공상과학 만화영화에서 본 듯한 거대한 콘크리트벽이 나타났다. 해발 18m 높이의 하마오카(浜岡) 원전 방파제이다.
이 방파제는 원전에 접한 해안을 따라 설치된 길이 1.6㎞, 두께 2.2m 철근콘크리트 장벽이다. 장벽 앞에는 거대한 진흙 방파제가 또 있었다. 작년 연말 1년간 철야 작업 끝에 완공된 시설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19m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이 새로 발표됨에 따라 원전회사는 이 방파제에 다시 4m 높이 철강 패널을 덧붙이는 공사도 하고 있다.
원전홍보팀 시게모리 노리유키씨는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을 가능성에 대비해 발전시설에 침수방지용 이중 특수 문을 180여개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에 잠겨도 견딜 수 있는 '잠수함식 구조'라는 것이다. 방수 펌프·비상용 축전지 설치, 방사성물질 필터 등 10여 가지 비상 설비도 마련 중이다.
일본에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국 54기의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다가 최근 들어 재가동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홋카이도의 도마리 원전 등 5개 원전 10기의 원자로가 이미 정부에 재가동을 위한 안전심사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 원전들은 쓰나미 대비용 방파제조차 제대로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신청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반면 하마오카(浜岡)원전은 방파제 등 보강 공사비만도 1500억엔(약 1조7000억원)을 들이는 등 원전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대비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재가동 신청조차 못 했다. 원전 측은 '완벽 방비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원전이 인구 밀집지역에 있는 데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 안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인근 지역 주민 호리고시 고지(67)씨는 "쓰나미에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를 누가 예상했겠느냐"고 말했다. '하마오카 원전을 생각하는 시즈오카 네트워크' 스즈키 다쿠마(鈴木卓馬) 사무국장은 "인구 밀집지역이어서 사고가 날 경우 주민 대피도 쉽지 않아 폐쇄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마오카원전이 쓰나미 대비책을 마련한다며 막대한 재원을 투자한 것은 재가동을 기정 사실화하려는 얄팍한 술책"이라고 했다.
원전이 입지해 있는 오마에자키시 주민 중에는 "거대한 방파제를 직접 보니 재가동해도 안전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민 오카와 미호노(大川美保乃·55)씨는 "재가동을 하지 않을 경우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마에자키시는 재정의 30% 이상을 원전 관련 세수에 의존하고 있고, 주민 1200여명이 원전 관련 기업에 취업해 있다. 이 때문에 비교적 재가동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많다.
문제는 하마오카 원전이 재가동을 하기 위해서는 30㎞ 이내 있는 11개 지방자치단체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마에자키시와 달리, 원전 관련 세수나 취업자가 없는 나머지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원전 사고 가능성에서 오는 위험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에 원전 재가동에 부정적이다.
최근 시즈오카현 지사 선거에서 하마오카 원전 재가동 여부를 현민(縣民) 전체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후보가 당선된 것도 재가동을 불투명하게 한다. 하마오카 원전 운영사인 주부(中部)전력 미즈노 아키히사(水野明久) 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모든 대비책을 마련한 후 재가동 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3월에 보강공사가 완료될 전망이다.
☞하마오카 원전
도쿄(東京)와 나고야(名古屋) 사이에 있는 원전. 반경 5㎞ 이내 5만명, 30㎞ 내 80만명, 50㎞ 내 200만명이 살고, 20㎞ 내 일본의 대동맥 도카이도(東海道) 신칸센과 도메이(東名) 고속도로가 지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하마오카에서 사고가 나면 대참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2011년 5월 가동이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