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서 4년제 대졸 취업자의 24.6%가 직장에서 굳이 대졸 학력이 필요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가입국 평균 9%보다 3배 가까이 높은 비율이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작년 초 고졸 사원 30명을 뽑고 보니 27명이 실제론 대졸자이면서 고졸 자격으로 응시한 하향 취업자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25~34세 청년층의 대학 이수율은 64%로 세계 최고이지만 대졸자 취업률은 60%가 안 된다. 올 1분기 현재 대졸자 309만명이 구직에 실패하거나 구직을 포기한 채 놀고 있다. 2020년까지 기업 현장에서 고졸 인력은 32만명이 부족한 반면 대졸 인력은 50만명이 초과 공급돼 대졸 하향 취업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쓸모도 없는 대학 졸업장에 쏟아붓는 비용과 시간은 개인·가정·국가 두루 고통이고 짐이다. 대졸자가 취업 후 평생 버는 소득에서 대학 등록금과 사교육비 등을 뺀 실질소득은 고졸자보다 1억2000만원쯤 적다. 본인도 괴롭지만 부모는 그 비용을 대느라 등골이 빠지고 노후 빈곤의 위험까지 덮어써야 한다. 그런데도 너도나도 대학에 가고 보자는 풍조 탓에 한국 젊은이들은 평균 26.3세에야 경제활동을 시작한다. 사회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향 취업까지 감수하는 과잉 학력자들이 대학 대신 일자리를 찾아 생산활동을 하면 GDP 성장률이 1%포인트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학력 과잉 풍토가 사라지려면 고졸 CEO·임원·고위공무원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러나 한동안 반짝하던 고졸 채용 분위기가 시들해져 올 4월 20~24세 고졸 취업자가 작년 4월보다 1만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작년 4월 증가치 4만4000명에서 1년 만에 3분의 1로 떨어졌다. 기업들이 앞장서 고졸자의 임금·승진·보직 장벽을 과감히 걷어내고 고졸자에게 알맞은 업무 영역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대졸 백수만 양산하는 부실 대학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일본에선 2007년 대학 정원이 입학 지원자보다 많아지면서 대학의 파산·매각·폐교가 잇달고 있다. 우리 대학도 2016년부터 일본처럼 대입 정원 역전이 시작된다. 지난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의 첫발을 뗐지만 5년 동안 350개 대학 중 6개를 정리하는 데 그쳤다. 과잉 대졸 학력자가 4분의 1이나 되는 현실을 보면 대학 숫자도 최소한 그만큼은 줄일 여지가 있는 셈이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과 출세를 보장하던 고도 성장기는 지났다. 이대로 가면 값비싼 졸업장이 정말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개인들도 이제 대학 진학의 손익(損益)을 냉정히 따져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