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 Review : 좀비스토리 -1-] 최초의 좀비 영화는 1932년작 '화이트 좀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좀비와는 다르게 이 당시의 좀비는 주술로 가사(假死)상태에 빠진, 영혼 없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1943년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라는 작품을 거쳐 1968년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와서야 제대로 된 공포캐릭터로서 좀비가 기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좀비의 몇가지 규칙이 생겼는데 첫째, 좀비는 산 자를 잡아먹고 둘째, 좀비들끼리는 살상하지 않으며 셋째, 좀비를 죽이려면 머리를 공격해야 하고 넷째, 좀비는 전염된다, 등등이다. 본래 최초의 좀비는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공포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노예)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어쨌든 서양에서는 드라큐라와 더불어, 각광받는 공포 캐릭터로서 좀비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명성은 사실 드라큐라에는 못 미친다. 좀비 소재 공포영화들은 대부분 B급 영화라는 이미지가 강해 드라큐라 장르와는 ‘노는 물’부터 사뭇 달랐다.
그런데 2013년 ‘월드워Z’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브래드 피트와 함께. 이제 명실공히 좀비도 메이저 플레이어가 된 것일까. 초특급 블록버스터로 탈바꿈한 좀비 영화의 등장을 기념하여 초기부터 지금까지 날로 강력해지고 있는 좀비의 ‘능력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다른 말로 ‘언데드’라고도 하는 좀비는 ‘죽지 않은 시체’다. 어떤 종류의 화학물질, 혹은 바이러스, 아니면 전염병 따위에 노출된 시체가 되살아나 느릿느릿 산 사람 고기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좀비의 정형화된 이미지다.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좀비가 그렇다. 죽은 지 꽤 된 좀비들은 적당히 부패되어 피부가 흘러내리는 지경에 이르니 그 모습이 끔찍한 것도 많다.
좀비들은 운 좋게 산 사람을 포획하면 팔, 다리, 얼굴 구분하지 않고 골고루 맛나게 뜯어 먹는다. 좀비물 공포영화는 필연적으로 하드고어한 장면이 연출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좀비영화를 B급으로 보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초기 좀비 특징을 제법 잘 보여주는 장면은 의외로 아주 최근의 영화 ‘웜바디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좀비인 남자주인공이 곤경에 빠진 여주인공에게 “좀비처럼 해”라며 동작을 가르쳐주는데 ‘그르릉’하는 소리를 내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느릿느릿 걷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좀비가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좀비의 이미지를 인상적으로 각인시킨 영화는 아마도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후(2002)’가 아닐까 싶다. 속편 ‘28주 후(2007)’에서도 오프닝 장면은 쫓기는 자의 공포가 굉장히 생생히 담겨 있다. 좀비의 속도가 육상선수의 그것을 능가하고 사력을 다해 도망가는 주인공의 표정은 절망에 빠져 있다.
현재까지 좀비의 육체적인 능력치는 영화 ‘월드워Z’에서 최고일 것이다. 물린 후 불과 12초가 지나면 좀비로 변해버리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것은 물론 점프 실력도 빼어나다. 훌쩍 뛰어 차 유리에 머리를 쳐박기도 하고, 날아가는 헬기를 붙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월드워Z의 좀비는 공포영화 역사상 최고의 능력을 가졌지만 공포감은 가장 적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 생명체처럼 인간성이 완전히 거세돼 버렸다. 수백, 수천, 수만명이 버스를 넘어뜨리고 도로 아래로 일제히 쏟아져 달리고 국경을 둘러싼 까마득한 벽을 기어이 타고 넘어가는 모습은 차라리 좀비가 아니라 바퀴벌레 같다.
영화 ‘월드워Z’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는 아주 볼만하지만 좀비 공포영화로서는 영화 속 좀비의 능력치에 비하면 무척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방법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세스코가 바퀴벌레를 박멸하듯, 어떻게 좀비를 박멸할 것인지에 영화는 더 집중한다.
굉장히 비인간적이지만 그게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하기엔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매정한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남겨진 씁쓸함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은 좀 가져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필자는 너무 감상적이었을까.
필자에게 좀비영화는 기본적으로 서글프다. 왜냐하면 조금 전까지 내 피붙이였던 가족, 혹은 사랑했던 연인이 좀비로 변하는 순간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하는 악마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자뿐 아니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좀비 영화를 찾아서 보게 만드는 강력한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서글픈 좀비 이야기, 다음 주에 한번 더 이야기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