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공직자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분명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있는지 없는지 도통 존재감(存在感)을 느끼기 힘든 공직자다. 다른 하나는 어떤 자리를 맡자마자 하나부터 열까지 그를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소문이 파다한 과잉(過剩) 과시형 공직자다. 두 유형 다 바람직한 공직자상(像)이 아니다. 이상적 공직자는 반드시 말해야 할 때, 행동해야 할 때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 방향을 잡고 혼란을 수습하면서도 평소에는 조직이 원칙과 규범에 따라 물 흐르듯이 흘러가도록 완급(緩急)을 조절할 줄 아는 공직자다.

박근혜 대통령이 9일 국무회의에서 경제부총리의 역할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논란의 전면(前面)으로 떠올랐다. 대통령은 "국민과 밀접한 중요한 문제들에서 언론에 부처 간 이견(異見)만 노출되고 있다"며 "경제부총리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서 개선 대책을 수립하고 보고해달라"고 했다. 주택 취득세율 인하 문제를 놓고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데도 경제부총리가 조율·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현 정부 경제팀이 그동안 내놓았던 추경예산 편성,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 기업 투자와 창업 활성화 대책의 대부분이 역대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설 때마다 들고나왔던 정책이었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서비스산업 대책에는 투자 개방형 의료 법인 도입과 원격진료 허용 같은 핵심 과제가 모두 빠졌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정면 대처할 의지 없이 논란을 불러올 만한 쟁점(爭點)을 피해 쉬운 일들만 골랐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더욱이 현 부총리는 경제 민주화와 통상임금 소송, 대선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와 관련한 과잉 입법에 제동을 건 이후에야 뒤늦게 "기업 활동을 지나치게 위축시키면 안 된다"고 경제 평론가 같은 뒷북 대응을 했을 뿐이다. 난관(難關)을 넘어 반드시 밀고 나가야 할 일, 엇갈리는 입장을 조정해서 타협할 일,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업을 훗날로 미루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요즘 같은 경제 침체 상황에선 "누가 경제부총리라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일리는 있다. 국회의 협조가 없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할 정도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 간 힘의 균형도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정부·여당 간 당정 협조 채널만으론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의 입법화(立法化)가 불가능해졌다.

상황이 이럴수록 경제 사령탑인 경제부총리는 정부 내부에서 위로는 대통령을 설득해 결심을 받고, 입장이 다른 부처들의 주장을 조정하고, 이를 토대로 여당과 야당의 지지를 얻어내는 정치력이 몇 배 중요해졌다. 경제부총리에게 필요한 이런 조건들이 대통령만 쳐다본다고 저절로 갖춰지는 게 아니다. 지금 같은 어려운 경제 여건에선 경제부총리의 적극적 변신(變身)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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