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봉하는 김용화(42) 감독의 스포츠 휴먼 블록버스터 ‘미스터 고’는 그 동안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이유들로 기대를 모아온 작품이다.
314만명을 들인 ‘오! 브라더스’(2003), 622만명을 모은 ‘미녀는 괴로워’(2006), 848만명을 앉힌 ‘국가대표’(2009) 등 히트작 제조기의 4년만의 신작, 순제작비만 225억원인 블록버스터, 국내 최초 풀 3D와 순제작비의 절반이 투입된 아시아 최초 디지털 캐릭터, 중국의 제작비 25% 투자와 18일 중국 5000개관 이상 개봉 등이 간추린 이유들이다.
동시에 영화가 별로면 어쩌나, 수백억원을 쏟아 부었다는 3D가 기대이하이면 어쩌나,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 등에서 CG 티가 팍팍 나면 어쩌나 등 우려와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첫 공개된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김 감독은 극중 링링처럼 ‘강타자’다. 우려와 걱정쯤은 모두 장외홈런으로 저 멀리 날려버리고, 대신 눈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귀를 행복하게 하는 소리, 말이 되는 이야기와 함박 웃음, 진한 감동을 관객 앞에 남겨 놓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될까’하고 의구심과 호기심을 품게 했던 링링은 바로 8일 새벽 1시 KBS 1TV ‘세계걸작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고릴라 모습 그대로 스크린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그것도 온순한 로랜드 고릴라 링링 뿐 아니라 라이벌 격인 사나운 마운틴 고릴라 ‘레이팅’까지 무려 두 마리가.
줄거리는 이렇다. 중국 옌볜의 룡파 서커스단 단장(변희봉)의 손녀인 ‘웨이웨이’(쉬자오)는 할아버지가 죽은 뒤 할아버지가 남긴 산더미 같은 사채로부터 서커스단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중 한국의 탐욕스러운 프로야구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가 찾아온다. 성충수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서커스단의 명물인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의 한국 프로야구단 입단을 유혹하고, 돈이 절실했던 웨이웨이는 한국행을 택한다. 한국 프로야구계는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링링의 두산 베어스 입단을 허락한다. 링링은 괴력을 앞세워 곧바로 홈런타자가 되고 야구팬들은 링링에게 열광한다.
사람과 고릴라가 대화를 나누고,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황당무계한 판타지는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를 통해 실화처럼 느껴진다. 모션 캡처, 이모션 캡처, 디지털 퍼(fur) 구현 기술 등 첨단 VFX로 창조된 링링과 레이팅은 중국의 천재 소녀배우 쉬자오(16)와 연기파 성동일(46) 김희원(42) 등과 어우러지면서 넘치는 생명력을 얻는다.
3D 영화가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도 야구공이 시속 200㎞로 스크린에서 튀어나와 눈앞으로 곧장 날아올 때는 움찔거리게 되고, 운동장에 비가 내릴 때는 손을 쭈욱 뻗어 빗줄기의 촉촉함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아바타'(감독 제임스 캐머런)를 통해 3D 영상을 처음 접하며 마냥 신기해 했던 2009년 겨울로 되돌아간 기분이 절로 든다. 게다가 옥에 티라도 찾을 기세로 러닝타임 132분 내내 3D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전혀 눈이 아프지 않은 것은 무슨 조화인가.
전작들에서 김 감독이 펼쳐 보인 웃음 보따리는 이번에도 푸짐하고 다채롭게 준비됐다. 이 영화까지 3개 작품을 김 감독과 함께해 온 페르소나 성동일, 새롭게 손잡은 김희원 등 주요 배우로부터 마동석(42)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36) 실명 그대로 등장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거 추신수(31·신시내티 레즈) 류현진(26·LA 다저스) 등 카메오, 동물이자 디지털 캐릭터인 링링과 레이팅까지 출연진은 이를 하나 둘씩 풀어놓으며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김 감독의 강력한 무기인 음악이 주는 감동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귓가에서 맴돌며 재미와 감동을 되새기게 만든다. 개봉 전까지 돌비 애트모스를 비롯해 오로 11.1, 소닉티어 등 세계 3대 입체 사운드 기술로 믹싱을 마친다니 본 상영에서 이 음악들이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생생한 현장 음향과 만나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자아낼는지 기대된다.
아쉬운 것도 있다. 김 감독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만큼은 ‘미스터 고’에 없다. 울먹거리거나 가슴 한 구석이 찡하지만 거기까지다. 한국 시장을 넘어서 중국, 동남아는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겨냥하는 ‘한류 영화’답게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를 담기 위해 절제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는지 다소 아리송한 것이 이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본 사람으로서 팁을 준다면, 사람인 웨이웨이 보다 링링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링링을 통해 웨이웨이는 성장하고, 성충수는 변모하기 때문이다. 링링의 마음에 들어간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영화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김 감독의 메시지를 느끼며 전작들에서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얼마든지 흘릴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첨단 기술에 관한 흐뭇한 기억은 머리에 남고, 영화는김 감독의 전작들을 넘어서는 걸작으로 가슴에 아로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