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6월 12~13일로 예정됐던 남북(南北)당국 회담이 무산됐다. 가장 큰 이유는 양측 회담 대표의 '격'을 둘러싼 갈등때문이었다.
6월 11일 열린 실무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대표단 명단을 서로 교환했는데, 우리 측 수석대표는 김남식 통일부 차관, 북측 수석대표는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이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우리 측 수석대표가 류길재(柳吉在) 통일부 장관이 아닌 김 차관인데 대해 항의하면서, 우리 측에서 장관급이 나오지 않으면 남북당국회담을 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수석 대표의 ‘(格)’문제로 회담이 결렬된 것이다.
이틀 후인 6월13일에도 북한 조평통은 장문(長文)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회담대표의 격과 급 문제에 대해 “남측의 무식과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한갓 괴뢰행정부의 장관 따위와 상대도 되지 않는다” 면서 “북남대화 역사가 수십년을 헤아리지만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공식 당국대화마당에 단장으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조평통은 조평통 서기국에 대해 “남북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한 공식기관”이라고 주장했다.
“北, 南을 대등한 대화상대로 생각않고 공작 대상으로 보기 때문”
이에 대해 1970년대부터 남북대화에 참가했던 강인덕(康仁德) 전 통일부 장관은 “1970년대에 남북조절위원회를 할 때 나왔던 김영주(金英柱) 조직지도부장, 박성철(朴成哲) 제2부수상은 당 비서보다 훨씬 높은 당 정치위원회 위원이었다”고 말하며 북한 조평통이 주장이 허구임을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우리측이 북한측 상대방으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지목한 것이 상대방에 대한 결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은 “1972년 7·4공동성명 당시 김영주가 북측 상대방으로 나선 것은 우리측이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의 상대방으로 김영주를 지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강인덕 전 장관은 “김영주를 북한의 2인자로 보고 대화상대자로 지목했는데, 북한측에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는 북한 내부적으로 후계자가 김정일로 정해지고, 김영주가 밀리고 있을 때였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북한에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나 통일전선부장이 남북대화를 총지휘하고, 남북대화에서 우리와 비교할 때 직급이 낮은 담당자들을 내보내는데 대해 “우리를 자기들과 대등한 대화상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혁명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공작을 통해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보니 대남담당비서, 통일전선부장이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1970년대부터 남북대화에 참여했단 송종환(宋鍾奐) 명지대 교수는 “북한이 특히 회담을 깨려 할 때, 갑자기 기존보다 낮은 당국자를 내보내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중반 남북조절위를 중단시킬 때, 북측 부위원장이던 유장식을 조직지도부 과장급으로 고체했다는 것이다.
강인덕 전 장관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류길재 장관의 상대역으로 지목한 것과 관련, “통일전선부장이 대남공작의 책임자이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대남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책임자니까,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 통일전선부장을 나오라고 한 것은 적절했다”고 말했다.
祖平統은 실체 없는 페이퍼 컴퍼니, “통전부에 소속된 일개 연락소일 뿐”
1970년대부터 남북대화에 참여했던 이동복(李東馥) 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는 “조평통 서기국이 남북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한 공식기관”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조평통은 실체가 없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조평통은 통일전선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가면(假面)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면서 “통일전선부 회담과(會談課)가 필요할 때마다 조평통으로, 아태평화위로, 6·15실천위원회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북한이 상급(장관급)이라고 주장하는 조평통 서기국장은 통일전선부 회담과장이 겸임하는 과장급 자리에 불과하며, 내각책임참사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근무했던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조평통은 통일전선부와 별개 기관이 아니라 엄연히 통전부에 소속된 일개 연락소”라고 말했다. 그는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은 통일전선부 제2부부장을 겸임하며, 이번에 보장성원(수행원)으로 이름이 오른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보다 상급자”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측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말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우리측에선 임동원 특보, 황원탁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이기호 경제수석비서관이 배석했습니다. 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끼지 못했어요. 반면에 북측에서는 김용순 비서 한 사람만 배석했습니다. 노동당 비서 한 사람이 우리의 수석과 특보 세사람을 상대한 셈인데다가, 통일부 장관이 배석하지 못한 걸 보고 ‘남측 통일부 장관은 별거 아니구나’라고 무시할 빌미를 준 셈입니다.”
"남북대화에 통일부 장관이 나가는 것은 잘못, 남북대화 전문 인력 별도 관리해야"
앞으로도 남북회담에서 대표의 '격'과 '급' 문제는 남북한 간에 기싸움과 갈등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복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먼저 남북간에 대표의 격에 대해서는 합의를 하되, 상대가 내놓은 대표에 대해서는 그 격에 맞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화를 하는 '상호간주원칙(相互看做原則)'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자유통일에 대한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야 하는 통일부 장관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대통령직속의 남북대화전담기구인 가칭(假稱) 남북대화추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조평통을 상대하게 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남북대화 전문인력들은 모두 남북대화추진위에 넣어 관리해야 한다. 북한이 그렇게 하고 있다”며 “북한은 전문 남북대화 일꾼이 나오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아마추어가 나가니까 판판이 깨진다”고 했다. 따라서 대북업무의 성격에 따라 대북공작은 국가정보원, 통일정책·전략의 수립은 통일부, 남북대화는 남북대화추진위에서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