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성공회성당 마당에 있는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카페 그레이스'. 파란 눈의 외국인 아가씨가 서툰 한국말로 "여기, 음료가, 나왔어요"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을 내준다. 노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갈색 앞치마를 두른 미국인 알리사 에이브러햄(Abraham·22)씨는 영어로 "아직 커피를 만든 경험이 별로 없어 맛이 조금 쓸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 카페는 성공회성당이 탈북 여성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만든 카페다. 그래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대개 탈북 여성이다.

탈북 여성들을 돕는 카페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미국 대학원생 알리사 에이브러햄씨가 14일 직접 만든 커피를 손님에게 건네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에이브러햄씨는 지난 2일 한국에 도착해 3일부터 이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에이브러햄씨는 "대학원 졸업 논문을 '탈북 여성의 인권'이라는 주제로 준비하고 있는데 좀 더 생생한 논문을 쓰기 위해 탈북 여성들을 직접 만나고 겪어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을 잘 아는 교수를 통해 이곳을 소개받아 일주일에 3일씩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에이브러햄씨가 처음 탈북 여성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친언니 때문이었다. 2년 전 경기도 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던 언니는 두 달에 한 번꼴로 탈북자 사회적응시설인 '하나원'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그때 겪었던 이야기를 동생인 에이브러햄씨에게 들려주었다.

에이브러햄씨는 "한국과 북한은 한 나라였고 한 민족인데, 어째서 탈북자가 생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전 세계 어떤 망명자 사연보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탈북 여성과 만났을 때는 속사정을 묻기가 곤란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을 되짚어보게 할까 봐 망설여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우(杞憂)였다. 에이브러햄씨는 "고난을 겪어온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탈북 여성도 배타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친절했다"며 "나도 그들도 비슷한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은 언어장벽 때문에 쉽지는 않다. 같이 일하는 동료와 대화를 하려면 각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을 켠 상태로 말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커피 한잔 주세요"라고 말하면 영어로 "A cup of coffee, please"라고 번역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문받는 시간이 다른 사람에 비해 두 배는 걸리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에이브러햄씨는 8월 중순쯤 미국으로 돌아간다. 석사를 마치고 나면 여성 인권을 주제로 박사과정도 밟을 계획이다. 그는 "한국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다"며 "편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한국어도 계속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