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서기 2000년 무렵,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에코토피아(Ecotopia)라는 나라를 세운다. 이 나라는 청교도적 노동 윤리에 근거한 현대 미국과는 정반대의 사회를 지향한다. 효율성을 높여 최대한의 생산을 이끌어내는 대신 자연과의 균형을 통해 미래의 생존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실제로 독립 이후 GDP가 3분의 1 이상 줄었지만 인간의 행복과 원래 무관한 그런 수치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을 전부 버리고 원시의 삶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어서 자기부상열차나 영상통화처럼 선택적으로 고른 일부 과학기술은 크게 발전해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대신 수작업을 통해 정이 가는 물건을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대도시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사냥한 사슴을 둘러메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동물의 피를 다른 승객의 뺨에 문지르는 장난을 하며 논다.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감정을 전혀 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예의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음식이 맘에 들지 않는 손님이 주방에 가서 고함을 지르면 요리사도 큰 소리를 질러대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그러면 싸움을 거들던 다른 손님들이 모두 주방에 들어가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돕는 식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억제하는 데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일부일처제 위주라고는 하지만 이성 간 혹은 동성 간 성관계가 자유롭고, 축제 때에는 난교가 벌어진다. 축구나 야구 같은 멍청한 프로 스포츠가 사라진 대신 1년에 네 번 격렬한 전쟁놀이가 벌어진다. 매년 50명 정도가 창에 찔려 죽지만, 인간의 내면에 깊이 새겨져 있는 공격욕을 분출시키며 흥분과 공포를 맛볼 수 있는 이 소중한 축제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런 정도의 희생은 감당할 수 있는 일로 친다.

히피 냄새가 물씬 나는 이 유토피아 소설은 미국 작가 칼렌바크가 1975년에 쓴 작품이다. 왜 이런 과격한 상상을 했을까? 방향을 잃은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