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불문율(不文律)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21일 두산과 넥센의 프로야구 잠실 경기에선 또다시 이와 얽힌 소동이 벌어졌다. 넥센이 12―4로 앞서던 5회초 양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충돌 직전까지 갔다. 8점을 앞선 상황에서 넥센 강정호가 2루에서 3루로 도루하자 감정이 상한 두산 투수 윤명준(24)이 상대 유한준과 김민성에게 몸 맞는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보복성 투구를 한 윤명준은 퇴장당했다. 그는 22일 KBO(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8경기 출장 정지 징계와 제재금 200만원 처분도 받았다. 유한준에게 몸 맞는 공을 던졌을 때 주심의 1차 경고를 받았는데도 김민성에게 또다시 위협구를 던졌다는 이유였다.
◇불문율, 당위와 예의의 관습
미국에서 생긴 야구엔 공식적인 규정 외에 '암묵적인 룰(unwritten rule)'이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타자는 항상 전력 질주한다', '심판의 볼 판정에 항의하지 않는다' 등은 당위적이다.
상대의 자존심을 존중하는 내용이 더 많고 복잡하다. '경기 후반에 크게 이기는 팀은 점수를 짜내려고 도루나 번트를 하지 않는다' '끝내기 홈런이나 데뷔 첫 홈런이 아니면 타자는 요란한 세리머니 없이 베이스를 돈다'…. 이런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 타석 때 바로 투수가 던진 공에 몸을 맞기 십상이다. 물론 이때 투수는 부상 위험이 적은 타자의 엉덩이나 등 쪽을 겨냥한다.
한국에선 '응징'의 문화가 적은 편이었다. 출신교 동문 선후배 관계로 맺어진 각 팀 선수들의 사이가 가깝기 때문이다. 민훈기 XTM 해설위원은 "프로 초창기엔 크게 이기는 팀의 젊은 선수가 도루하면 같은 팀 선배들에게 혼나곤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가 시비 끝에 거친 싸움을 벌이는 일이 더 잦다.
21일 두산―넥센전의 상황은 야구 불문율의 잣대를 들이대기에 애매했다. 넥센으로선 경기 중반 8점 리드가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번 시즌엔 유난히 대역전극이 많다. 두산이 지난 8일 SK에 11―1로 앞서다 12대13으로 역전패한 적도 있었다.
하일성 KBS N 해설위원은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하지만 그걸 모든 선수에게 다 지키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에겐 개인 기록이 곧 연봉과 직결되는 만큼 도루 하나도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경기 후반 크게 앞선다고 해서 선수가 느슨하게 뛰면 오히려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가장 큰 불문율은 '선수 보호'
야구에선 두 팀 간에 시비가 붙었을 때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모두 몰려나오는 것 또한 불문율이다. 그라운드로 뛰쳐나오지 않는 선수는 팀의 일원으로서 공동체 의식이 없다는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거친 싸움도 벌어진다. 류현진이 속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투수 잭 그레인키는 지난달 샌디에이고의 카를로스 �틴에게 몸 맞는 공을 던졌다가 그에게 어깨로 들이받혀 쇄골이 부러졌다. 그레인키는 수술 후 한 달 만에 복귀했다. 가해자였던 �틴은 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아이스하키에선 '주먹질'이 다반사다. 워낙 경기가 격렬하다 보니 흥분을 참지 못한 선수들끼리 자주 난투극을 벌인다. 아예 경기 분위기를 바꾸려고 전문적으로 싸움을 거는 선수도 있다. 싸움은 일대일, 맨주먹이 원칙이다. 서로 동의한 상태에서 펀치를 주고받다 끝내면 몇분간 뛸 수 없는 페널티만 먹는다. 스틱을 썼다간 중징계감이다.
종목에 따라 불문율의 해석이나 적용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정신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21일 두산의 연속 사구(死球) 사건은 야구의 불문율과 관계없는 화풀이나 마찬가지였다. 1군 경기에 통산 12번 출전해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두산 우완 투수 윤명준이 자의로 연속 빈볼을 던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코칭 스태프의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