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 산업부 차장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 3'가 국내 개봉 12일 만에 관객 600만명을 돌파했다. 1·2편의 인기를 능가하는 속도다. 영화와 비슷한 입는 로봇은 2004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가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군인용 로봇 다리 '블릭스(bleex)'를 들 수 있다. 로봇 다리를 입은 사람은 로봇 다리 자체 무게 50㎏에 배낭에 실은 32㎏의 짐까지 모두 82㎏을 짊어졌지만 실제로 느끼는 중량은 2㎏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입는 로봇이 상용화됐다.

만화는 그보다 빨랐다. 아이언맨은 미국 마블 코믹스사가 1963년 발간한 공상과학(SF) 만화에 처음 등장했다. 아이언맨을 가장 많이 본 관객도 어릴 때 로봇 만화를 읽고 자란 30대 남성이라고 한다. 그들이 영화에 환호한 것은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니라 어릴 때 꿈꿨던 미래를 조금 빨리 보여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도 미래를 먼저 보여준 만화가가 있다. '심술통'이란 캐릭터로 유명한 이정문(72) 작가는 1965년 한 학생 잡지에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의 한 장짜리 만화를 발표했다. 작가는 '앞으로 35년 후 우리들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태양열을 이용한 집과 움직이는 도로, 전파 신문·전기 자동차·소형 TV 전화기 등을 그렸다. 이미 만화의 상상력은 태양광이나 태양열 발전, 무빙워크, 인터넷, 전기 자동차, 휴대전화 등으로 상당 부분 실현됐다.

이우일 서울대 공대 학장은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이정문 작가의 만화를 보여준다.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만화가적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모두 반대했다"며 "우리 교육이 생각을 틀에 넣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만화가 과학기술의 발전 양상을 예측한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로봇 만화이다. 일본에서 1963년 처음 방영된 '철인 28호'는 리모컨으로 조종했다. 1972년의 '마징가 Z'에는 사람이 탄 비행기가 로봇의 머리에 결합해 조종한다.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모형 비행기에서 조종사가 탄 항공기로 발전한 셈이다.

이후 등장한 로봇은 미래형이다. 1979년 나온 '기동전사 건담'은 '모바일 슈트', 즉 '움직이는 전투복'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아이언맨과 같은 입는 로봇이다. 우리나라에서 1976년 개봉된 국산 애니메이션 '로버트 태권브이'는 이보다 더 진일보했다. 아직 건담이 등장하기도 전에 마징가Z에 건담식 모바일 슈트를 결합시켰다. 철이가 탄 제비호가 로봇의 머리에 결합해 조종한다는 점에서는 마징가Z와 같지만, 철이의 태권 동작이 로봇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모습은 건담의 모바일 슈트를 연상케 한다.

가장 극적인 형태의 로봇 만화는 1995년 나온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이제 사람은 로봇과 일종의 정신감응을 한다. 생각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미국 브라운대 연구진은 뇌졸중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뇌 운동중추에 작은 센서를 심어 팔을 움직이려고 할 때 나오는 신호를 포착한다. 컴퓨터는 이를 로봇을 움직이는 명령으로 바꾼 것이다. 생각을 기계에 연결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 Computer Interface)'다.

최근 이우일 학장은 이정문 작가에게 '2041년의 미래'를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그린 미래엔 좁쌀만 한 수술 로봇이 나오고 휴대전화가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원하는 꿈을 꾸게 하는 안경과 과속 방지 도로도 있다. 처녀귀신과 UFO의 정체가 밝혀진다는 엉뚱한 상상도 나온다. 이 학장은 "황당해 보이지만 누가 아느냐"고 말했다. 1965년 만화를 본 어른들은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무시했지만, 아이들은 자라서 그 꿈을 실현했다.

사실 일본이 로봇 강국이 된 것도 만화 덕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데쓰카 오사무는 1951년 월간 '소년'지 4월호부터 1년간 '아톰대사'를 연재했다. 1963년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TV 만화영화 '철완 아톰'이 방영됐다. 2차대전에서의 패전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어린이의 친구 아톰을 보고 희망을 얻고 로봇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은 다시 일어섰고 어느 나라보다 먼저 로봇을 받아들여 산업화했다.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는 한 대기업의 캠페인 광고는 예전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보다 과학자를 먼저 꿈꿨다고 했다. 그때 아이들은 SF 만화를 보고 꿈을 꿨고, 자라나 반도체, 자동차, 컨테이너선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에게 SF 만화를 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