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야 벼룩' '초가삼간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 '이 잡듯 뒤진다' '서캐 훑듯 한다' 여북했으면 속담과 관용구에 녹아들 만큼 빈대, 벼룩, 이는 먼 옛날부터 우리네 삶의 일부였다. '담벼락에는 빈대가 끓지, 방바닥에는 벼룩이 끓지, 땟국이 흐르는 옷이나 이불에는 이가 끓지.' 이광수 소설 '흙'의 한 구절 마냥 일제 식민지 시절에도 쫓아낼 수 없던 불청객이었다.
"우리 전 민족이 각각 제 몸이나 집안에 물것 없이 살기로 결심하지 않고는 남과 섞여 사는 세상에서 밀려나고 말 것이다.…정부에서는 DDT를 무료로 제공하니 물보다 가루로 만든 것을 얻어다가 조금도 낭비하지 말고 온 집안과 어린애들 머리털 속까지라도 뿌려주며…." 낙동강 전선에 포화가 작렬하던 1950년 9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 미물들을 상대로 또 하나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물것 삼총사는 흡혈귀 일제(日帝)를 몰아낸 미국의 선물 DDT로도 박멸할 수 없었다. 고봉밥으로도 주린 배가 다 차지 않던 간난(艱難)의 1950년대. 방안 벽지는 눌려 죽은 빈대가 남긴 핏자국으로 얼룩졌고, 스멀스멀 몸 여기저기를 누비던 보리알만큼 굵은 수퉁니들과 옷 솔기 사이사이에 쓸어놓은 서캐들은 엄지손톱 사이에서 툭툭 소리와 함께 터졌다. '가랑니(갓 깨어난 어린 이)가 더 문다'는 속담을 몸으로 느끼며 자란 이들은 참빗질로 머릿속 서캐를 훑어 내리던 어머니 손길의 시원함을 기억한다.
'빈대의 대적(大敵)은 연탄'이란 1964년 11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마냥 연탄 난방 비율이 75%에 달한 1960년대 후반 흡혈충들은 연탄가스에 밀려 우리 방과 몸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전국 유아원생과 초등학생의 머릿니 감염 비율이 4.1%에 달한다는 2008년 질병관리본부의 발표가 말해주듯, 아직 인류의 탄생과 함께한 숙적(宿敵)과 불편한 동거에 마침표는 찍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