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로 머리를 감던 한국의 대중에게 샴푸가 폭넓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쯤이다. 락희화학(현 LG화학)이 1967년 11월 개발한 '크림샴푸'가 국산 샴푸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샴푸'라는 상품이 이 땅에서 팔리기 시작한 건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4년 초여름 조선일보 지면에 큼지막한 샴푸 광고가 보인다. 지금도 발매 중이라는 일본 '가오(花王) 비누주식회사'의 제품이다. 일본 발음을 따르지 않고 '화왕(花王)샴푸'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나왔다. '두발 세분(洗粉)'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가루 형태의 샴푸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초기 샴푸 광고도 요즘처럼 미녀를 모델로 내세워 시선을 끌고 있다(조선일보 1934년 6월 29일자). 화왕샴푸는 1935년엔 평양 기생 노은홍(盧銀紅)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릿결의 비결이 화왕샴푸라고 광고했다(신현규, '기생 이야기').
1930년대 조선일보 지면을 보면 샴푸 광고는 일본 가오사(社)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초기의 샴푸 광고는 '모발이 빨리 마른다'(1934년 6월 29일자) '머리털 성장을 돕는 제품'(1934년 10월 23일자) 등 효능 설명에 치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의 샴푸 CF처럼 탐스러운 머릿결을 강조하는 쪽으로 포인트가 바뀐다. '독특한 영양제가 작용하야서 (그) 결과 윤택을 조케 하고…'(1935년 8월 9일자), '(머리털이) 부드러운 맛이 잇고 윤태(潤態)가 흐르는 유일한 세발료(洗髮料)'라고 광고문을 썼다(1935년 11월 24일자).
여성 모델이 찰랑찰랑 긴 머리를 흔들어 대는 요즘 샴푸 광고와는 달리, 옛 샴푸 광고는 한복 입고 머리를 쪽 찐 여성을 모델로 즐겨 썼다.
'빗나는 흑발이야말로 동양 부인의 자랑이다/ 언제나 깨끗하고 염려(艶麗)하게…흑발(黑髮)을 직혀라'(1935년 12월 7일자)
'두발은 언제나 뺀질하게! 두발이 갱생(更生·다시 태어남)된다!'(1937년 1월 10일자)
그러나 샴푸 광고는 몇달에 한 개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누 광고가 한 달에 몇번씩 실렸던 것에 비해 훨씬 적다. 당시엔 비누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10일에 한 번은 꼭 머리를 감으라'고 광고할 만큼(1927년 2월 23일자), 머리 감기가 월례 행사 혹은 계절 행사였던 시절이었으니 샴푸 판매량이 업자의 기대에 못 미쳤을 수도 있다. 비누도 귀했던 시절,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는 건 일부 부유층의 호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