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랑 짝이 되게 해주세요."

서울 강동구의 한영고 이인주(17·2학년)양은 작년 초 담임교사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A는 "눈치 없고 나댄다"는 이유로 학기 초부터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던 급우였다. 친구가 없으니 의기소침했고 늘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잤다.

이양은 A의 짝이 된 이후로 A의 '수호천사'가 됐다. 조(組)별 활동을 할 때도 다른 친구들에게 "A도 같이하자"고 설득해 같은 조에 넣고, 수학여행 때도 A와 같은 방을 썼다. 이양은 친구들에게 A를 싫어하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A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A는 깜짝 놀라며 "내가 그런 부분이 있는지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A는 친구들이 싫어하는 부분을 조심하며 고쳐나갔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영고 ‘또래상담반’ 학생들이 자기에게 상담받는 친구에게 쓴 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문 기사를 붙인 뒤 격려하는 말을 함께 담은 편지다. 또래상담자 학생들은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활동을 한다.

"한 번은 A가 그려준 제 캐릭터를 카카오톡(스마트폰 대화 프로그램)에 올렸어요. 친구들이 'A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렸어?'하고 신기해하며 A한테 '나도 그려달라'고 말을 거는 거예요. A도 장점이 많은 아이라는 걸 아이들도 알게됐어요."(이양)

이제 2학년이 된 A는 친구가 많다. 어두운 성격도 밝고 긍정적으로 변했다.

'왕따' 친구에게 먼저 다가간 이양은 '또래상담자'다. 또래상담은 학생이 학생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또래상담이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고 판단, 작년부터 또래상담을 권장해왔다. 청소년이 가장 많이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가 부모(20.7%)나 교사(1.4%)보다 친구(51.1%·2010년 통계청 자료)이기 때문이다. 또래상담을 운영하는 학교는 2011년 573교에서 지난해 말 4638개교로 늘었다.

한영고는 이보다 훨씬 앞서 14년 전인 1999년부터 또래상담반을 운영해왔다. 당시 6년 차 교사였던 류부열(47) 사회교사가 '또래상담반' 동아리를 꾸렸다. "학교 폭력에서 또래의 영향력이 지대하더라고요. 왕따는 빨리 알아내는 게 중요한데, 교사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아이들은 그 속에 들어가 있으니 피해가 커지기 전에 바로 알 수 있지요. 어려움을 겪는 애들에게는 자기 눈높이에서 고민을 들어주는 게 상당히 도움도 되고요."

처음엔 류 교사의 또래상담반은 인기가 없었다. "그게 뭐야? 또라이 상담?"이란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이제는 매년 경쟁률 약 3대 1을 자랑하는 '인기 동아리'가 됐다.

물론 또래상담만으로 학교 폭력을 100%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영고의 학교 폭력은 다른 고교들보다 훨씬 적다. 2011년과 2012년엔 학교폭력징계위원회가 각각 1건 열렸고, 올해는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