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의 어느 날,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팔음산 중턱에 위치한 '팔음산고시원'. 한 손에 바리캉(이발기)을 든 대입 재수생 이창우씨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이날 그는 제 손으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 늦잠 잔 자신에 대한 일종의 '페널티'였다. 고 2 때까지만 해도 '알아주는 문제아'였던 그는 그해 내내 스스로 나태해질 때마다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씨의 고교(경기 성남 송림고) 내신 성적은 5.5등급이다. "이대로 가다간 '배달부 인생'으로 주저앉을 것 같은" 위기감에 정신을 차린 그는 고 3 되던 해부터 마음속으로 칼을 갈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준비했다. 덕분에 현역 시절 5등급이었던 언어(현 국어) 영역 성적은 재수 이후 2등급까지 올랐고 외국어(현 영어) 영역 역시 4등급에서 2등급으로 상승했다. 사회탐구 3개 과목까지 합하면 그가 한 해 동안 끌어올린 성적은 무려 13등급에 이른다.
◇실현 못할 꿈은 과감히 버려라
그의 어릴 적 꿈은 컴퓨터그래픽(CG) 디자이너였다. 계기는 전쟁영화 '300'(2006)이었다. "300엔 CG 처리가 돋보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해요. 용사들이 쏘는 화살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CG 디자이너 손에서 탄생했죠. 그게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고요. 학교 친구나 선생님에게 그런 얘길 하면 '꿈이 있다는 게 어디냐'며 덮어놓고 응원해줬어요. 하지만 그런 격려가 제겐 오히려 독(毒)이 됐죠. 꿈이 있다는 사실에 도취해 정작 그 꿈을 이루려는 노력엔 소홀했거든요."
그는 결국 고 2 겨울방학 무렵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CG 디자이너는 극히 일부뿐'이란 현실을 깨닫고 재빨리 꿈을 접었다. 그런 다음, 부랴부랴 수능 공부에 돌입했다. 하지만 기초가 워낙 없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그는 우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듣는다는 인터넷 강의부터 수강했다. "하루 6시간(15강좌 분량에 해당) 정도 비타에듀 수업만 들었어요. 분량이 워낙 많아 모든 강의를 2배속으로 재생했죠. 하지만 수학 말곤 성적이 좀처럼 안 올랐어요. 완강(등록한 인터넷 강의를 정해진 기간에 모두 들음)에 집착해 세부적인 수업 내용은 흘려들었거든요." 결국 그는 2012학년도 수능에서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합 11등급'의 아쉬운 성적으로 그해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다.
◇'계획'에 눌리는 공부는 피해야
이씨의 '진짜 공부'는 첫 수능을 치른 직후부터 시작됐다. 학원 도움 없이 혼자 재수하기로 결심한 그는 각종 인터넷 대입 커뮤니티를 돌며 500편 넘는 명문대생 합격 수기를 독파했다. 산속 고시원을 찾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시 그의 일과는 인터넷 강의 수강과 복습의 무한 반복으로 짜였다. 특히 주력했던 건 첫 수능 당시 5등급에 머물렀던 언어 영역 공부였다. "문학 지문의 경우, 언어 영역 강의를 듣기에 앞서 혼자 작품을 분석하곤 했어요. 그런 다음, 선생님(인터넷 강의 강사)과 제 분석 결과를 비교했죠. 두 내용이 서로 다르면 인터넷 강의 전용 게시판에 질문을 남겼고, 24시간 이내에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궁금증을 해소했습니다." 비문학 지문 공부는 문단 내용 요약에서부터 시작했다. △지문을 읽은 후 △문제집을 덮고 △좀전에 읽은 글의 내용을 기억한 다음 △문단별 중심 문장을 적는 방식으로 매일 훈련했다. 처음엔 관련 단어 두세 개만 떠올라도 잘 쓴 축에 속했지만 두어 달 후엔 비문학 지문 정답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외국어 영역은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공부했다. 일단 수능 연계율이 높은 EBS 교재(수능특강·수능완성·수능 330제·인터넷수능) 속 지문을 죄다 외웠다. 각 교재는 10회씩 훑었다. 첫날은 3개 단원을, 이튿날엔 전날 본 단원을 포함한 6개 단원을 공부하는 식으로 공부량을 점차 늘렸다. 1일 학습 계획을 짤 땐 '스트레스 요인'부터 제거했다. "모든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진 않았어요. 교재 몇 쪽까지 공부 범위를 정해놓으면 압박감 때문에 공부가 잘 안되더라고요. 스톱워치로 공부 시간을 재는 것도 몇 번 시도하다 그만뒀습니다. 한번은 스톱워치에 찍힌 시간을 늘려보려고 15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피곤하기만 하고 효율은 떨어지더라고요."
◇파일럿 꿈 향한 도전 "이제 시작"
한서대 항공운항학과를 알게 된 건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지망생 친구 덕분이었다. 이씨는 학과 공부와 취업이 연계된 항공운항학과 커리큘럼에 매력을 느꼈다. 한서대 항공운항학과는 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 등의 민간 항공사와 함께 조종사 연계과정을 운영 중이다. 졸업 후엔 이들 업체의 조종사가 될 수도, 한서대 비행 교관이 될 수도 있다. "아직 믿기지 않아요.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만 어렴풋하게 품고 있던 제가 정말 하늘 위를 누비게 되다니…. 물론 아직 비행기를 직접 몰아본 적은 없어요. 운항 실습 수업은 3학년 때부터 시작되거든요. 그때를 기다리며 이제까지 방황해 온 시간만큼 더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