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위해 만든 공공 시설물의 영어 안내문이나 표지판, 영어로 표기한 간판·광고 문구 등이 잘못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가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희정 의원은 경복궁 영어 안내문 권역별 안내판 13곳 중 대표적인 9곳을 점검한 결과, 모두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공공시설이나 기관의 외국어 안내문은 국격과 연결되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전문 번역센터의 설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거주 외국인이 전국에서 찾은 엉터리 영어 안내문의 오류를 바로잡은 책을 펴냈다. 《영어 파파라치》(진명출판사)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의 저자는 덴마크 국적의 토머스 프레데릭슨(29)씨. 현재 진명출판사에서 영어전문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책을 쓰기 위해 동생 앤더스와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잘못된 영어 표현들을 모았다. 일일이 발품을 팔며 사진으로 기록하느라 자료 조사에서 책 출간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좀 더 현실적이고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국의 영어 안내문에서 자주 보이는 실수들이었지요. 잘못된 표현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오류들이 어떻게 교정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문법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광고나 예술적 효과를 위해 일부러 틀리게 표기한 것은 제외하고, 오로지 작성자의 실수에 의한 것이나 작은 실수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공공기관의 안내문, 영어학원의 광고문 같은 것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 동생이 한국에 올 때마다 함께 여행하면서 자료를 모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덴마크에서 태어났지만 그에게 영어는 모국어나 다름없다. 항공사 직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프랑스 등지로 옮겨 다니며 현지 국제학교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는 “청소년기에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며, “어느 순간 영어를 읽고 쓰는 게 즐거워져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꼭 외웠고, 글을 쓸 때 활용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면 그것은 진짜 목표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한 그는 “영어 자체를 목표로 삼아야 실력도 늘고 과정도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언젠가는 ‘한국의 매력’을 주제로 한 책도 쓰고 싶어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 재학 시절인 2007년 교환학생으로 이화여대에서 5개월간 수학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낯선 나라 한국에서의 생활은 매일매일 놀라움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거리를 걷고, 밥을 먹고, 물건을 사는 일상적인 일조차 신비로웠다.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그는 2년 후 다시 한국으로 왔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머물 집조차 구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북한산 하이킹에서 우연히 진명출판사 안광용 회장을 만났다. 산 정상에서 괴테의 책을 읽고 있던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안 회장이었다.

영어를 잘 하고, 그 역시 젊은 시절 괴테에 빠졌던 터라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내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가 되었다. 이후 한국에 오래 머물고 싶어하는 그를 안 회장은 진명출판사 직원으로 채용했다. 덕분에 그는 취업 비자와 함께 안정적인 일터를 얻었다. 이 우연한 만남을 그가 “대단한 행운”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그는 현재 영어 교과서와 수험서 등 진명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영어 교재를 감수하는 한편, 영어와 관련된 저술 활동을 한다.

저서로는 이번에 펴낸 《영어 파파라치》 외에 《토마스의 여행 영어》가 있다. “한국은 과거와 현재, 남과 여, 도시와 시골, 노인과 청년 사이 묘한 긴장감이 있어요. 그러면서 또 조화롭게 공존하지요. 저는 이것이 한국이 가진 저력이자 창조의 원천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한국 사회가 가진 이 매력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요.”

《영어 파파라치》의 공동 저자인 동생 앤더스는 현재 코펜하겐에 머물고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앤더스와의 공동 작업은 이번이 두 번째로, 두 사람은 서로 성향이 달라 상호 보완이 잘된다고 한다. 그는 “동생과 함께한 순간들이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토머스와 앤더스의 북 시리즈’를 만들 생각입니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책은 《영어 파파라치》와 비슷한 형식이에요.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유명한 영어 교재들조차 오류가 많다는 사실이었어요.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을 생각입니다.”

* 토머스, 앤더스 형제가 찾아낸 잘못된 영어 표기

Do not tap on the glasses.(x) 안경을 두드리지 마세요.
Do not tap on the glass.(o) 유리를 두드리지 마세요.
출처 : 서울대공원 경고문
명사의 복수형을 잘못 사용해 '유리를 두드리지 말라'는 경고문이 '안경을 두드리지 말라'는 뜻으로 왜곡된 사례. 단수형 glass는
유리, 복수형인 glasses는 안경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명사의 복수형에는 '~s'나 '~es'를 붙이지만 셀 수 없는 명사(불가산명사
)는 대부분 복수형으로 쓰지 않는다. 불가산명사라도 양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단위를 나타내는 부가적인 명사와 조합한다. 예를 들어
비가 많이 내리면 'a lot of rain', 어마어마한 행복감을 말하고 싶을 때는 'a ton of happiness'로 쓴다.

No dumping/No dump garbage(x)
Don't litter/No littering(o) 쓰레기 투기 금지
출처 : 북한산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
한국의 어느 산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안내문이다. 그러나 dump는 상당량의 쓰레기 더미를 말할 때 사용한다. 경고문이 의미하는
소량의 쓰레기에는 litter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또한 Don't를 사용하는 문장에서는 동사 원형(litter)을, No로 시작할 때는 동명사
(littering)를 써야 한다.

Korean Tradition Restauraunt.(x)
Traditional Korean Restaurant.(o)
출처 : 광화문의 한 한식당 간판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문법 오류로, 한 구문에 무려 세 개의 실수가 있다. 우선 Restaurant을 Restauraunt으로 표기해 철자법이
틀렸고, 형용사를 잘못 사용했다. 즉, 'Korean Tradition Restaurant'은 어느 나라 전통음식이든 상관없이 '한국에 있는 식당'
을 의미한다. '전통한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라는 의미를 전달할 때는 'Traditional Korean Restaurant'이라고 써야 한다. 영문법
에서는 가장 중요한 형용사를 명사 앞에 붙여 그 명사를 수식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오류는 명사와 형용사의 형태를 혼동한 것
으로 'Tradition'이 아니라 'Traditional'로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