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동 사회부 차장

"'불의타'가 뭐야?"

며칠 전 대법원이 법원 재판에 대한 변호사들의 불만을 수집해 작성한 보고서에 '불의타'라는 말이 나왔다. 법조 출입 기자들도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찾아보니 일본말 '후이우치(ふいうち)', 즉 '不意打ち'를 그대로 수입한 표현으로, '기습 공격' '예기치 못한 타격'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었다. 법정에서 쟁점으로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사안이 갑자기 판결문에 등장해 한쪽이 어이없이 패소하는 경우를 뜻한다고 한다. 법조계의 은어(隱語)인 이 말은 법을 다루는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언어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떠올리게 한다.

얼마 전 한 검찰 간부는 퇴임사에서 '궁불실의 달불리도(窮不失義 達不離道)'라는 말을 남겼다. 중국 고전 맹자의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에 나오는 말로, '(선비는) 궁해도 의로움을 잃지 않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바른길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럴 때 '무식한' 일반인들은 얼른 컴퓨터 검색창을 두드려야 한다. 300명이 넘는 검사와 검찰 직원들이 이 퇴임사에 댓글을 달며 이별을 아쉬워했다지만 최근의 검찰 추문을 떠올리면 '그들만의 리그'로 들린다. 정치인들과 고위 공무원들도 중국 고전 문구나 시구를 인용해 퇴임 소회를 밝히는 경우가 왕왕 있으나 유독 법조계가 심하다.

멋있고 재치 있는 말을 탐하는 것은 대체로 지적 엘리트주의와 관련이 있다. 법원에서 판결문 쉽게 쓰자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나 일반인들에게 판결문은 여전히 어렵다.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성추문 검사와 검찰 고위층의 별장 성 접대 의혹은 '막장 검찰'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새로운 일도 아니다. 과거에도 조직폭력배와 결탁하거나 스폰서를 끼고 부정한 수사를 한 검사가 적지 않았다. 그런 일이 드러날 때마다 "우리 사회 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식의 자아도취적 개탄조가 끊이지 않았다. 후배 판검사들의 항명·집단행동 사건들에 대해서도 "검찰 최악의 날" "법원 초유의 사태" 등 법조계를 과도하게 신성시하는 표현들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탄식은 늘 진정성 없는 수사(修辭)에 그쳤고 유사 사건은 어김없이 재발했다.

새 검찰총장이 검찰 개혁 의지를 다부지게 밝혔다. 수사 시스템뿐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검찰의 이미지까지 일신해보겠다는 각오다. 법원도 재판 생중계를 허용하고 대학 캠퍼스에 이동 법정을 여는 등 법률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몸짓이 바쁘다. 하지만 법조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엘리트주의를 벗어날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무늬만 개혁'이 되기 십상이다. '최악의' '초유의'라는 사건이 수십 번 반복됐고, '이제는 정말'이라는 개혁 의지가 수십 번 천명됐지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사람들은 안다. '우리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엘리트주의에 빠지면 쉽사리 '상식선'을 넘게 된다. 법조인이라고 다 엘리트도 아니다. 지난해 법조 시장에 진출한 법조인은 2500명이나 된다. 이 중 진정한 엘리트는 능력과 인품을 갖추고도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