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상징하는 빨간 옷의 카이, 번개를 뜻하는 파랑 옷의 제이, 얼음과 땅의 의미가 각각 깃든 흰옷과 검정 옷을 입은 잔과 콜. 네 닌자는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전사(戰士)로 활약한다.

이런 스토리라면 등장인물들은 훤칠한 키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얼굴도 조막만 한 '꽃미남'들일 것 같은데, 가만 보니 '사등신'의 노랗고 둥근 얼굴에 손가락은 둥글게 집게 모양으로 굽은 '레고 사람'이다.

인기 애니메이션‘닌자고’의 주인공들. 어른들에게도 익숙한‘레고 사람’에 한눈에 봐도 일본색이 강한 닌자 복장을 입혔다.

요즘 유치원·초등학생들의 최고 액션 영웅이면서 부모들에게는 '지갑 털이 주범'으로 활약 중인 '닌자고'다. 그동안 '해리 포터' '토이 스토리' 등 인기 만화·애니메이션과 연계한 제품을 만들어왔던 덴마크 레고사는 자기 제품을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역발상 마케팅에 나섰고, 그 산물(産物)이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닌자고'다.

2011년 1월 미국 카툰네트워크를 시작으로 전 세계 TV에 방영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애니맥스·투니버스·어린이TV 등 주요 만화 채널에서 방영됐거나 방영 중이다. 유아교육·유통업계 관계자들 말에서 닌자고 인기는 한층 생생하게 들린다.

"닌자고 열풍에 힘입어 매장의 레고 제품 구매 손님 수는 지난해 월 평균 6만307명으로 1년 전보다 83%나 늘어났다."(이마트)

"수업 끝나고 통학버스가 올 때까지 아이들을 문 앞에 대기시켜야 하는데 그때 PC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닌자고 동영상을 틀어주면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수도권의 한 유치원 교사)

닌자고의 폭풍 인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사등신에 집게 팔을 가진 우스꽝스러운 레고 닌자' 모습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크게 어필했을 것이라는 분석. 한 유치원생 학부모는 "아이가 '닌자고는 어른들처럼 안 생기고 나처럼 생겨서 좋다'고 한다"라고 했다. 부모들의 레고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한몫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30~40대 학부모 세대에게 레고는 '똘똘한 나라 덴마크에서 만든 창의적 완구' 이미지가 강하다. 레고 관계자는 "만들다가 부순 뒤 설명서가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레고 특유의 강점은 부모 세대를 거쳐 자녀에게도 큰 호응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 선명한 일본색 때문에 이런 인기가 찜찜하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지상파 중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는 EBS 글로벌콘텐츠본부 정선경 부장은 "대놓고 왜색(倭色)인 데다 장난감 팔아주는 게 명백한데 굳이 방영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EBS에서는 방영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응용이 쉽고 갖고 놀기 편하다는 학부모 평이 많은 걸 보면 국산 캐릭터들이 더 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