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주 주부·서울 양천구

미국에서 아파트 4층에 살 때였다. 어느 날 문에 붙어 있는 작은 '쪽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얼마 전부터 아래층에서 천장을 막대기 같은 걸로 여러 번 두드리는 것 같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집 소음 때문이었다는 걸 말이다. 아래층 주민의 불만을 접수한 관리사무소에서 우리 집에 붙여 놓은 '협조문'인 셈이었다.

미국의 아파트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아무리 살살 걸어도 '삐그덕' 하는 특유의 소음이 있다. 조용한 밤에는 위층, 옆집에서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당시 두 아들은 8세, 4세로 한창 집에서 뛰놀 때였고 게다가 둘째는 심한 변비로 하루에도 몇 번씩 큰소리로 울면서 이리저리 뺑뺑돌기를 했으니 그 소음이 어땠을까? 층간 소음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쿵쿵거리는 어른 발걸음 소리보다 때로는 작은 아이가 콩콩콩 뛰는 소리가 더 신경을 자극한다는 걸. 아래층에 조용한 젊은 학생 부부가 산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쪽지를 받은 뒤로 소음을 안 내려고 하면 할수록 애들은 더 뛰어 대고 나까지 긴장해서 무거운 물건을 더 자주 떨어뜨리니 하루하루가 불안불안했다. 그때마다 아래층에서 막대기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는 더 자주 들려왔으니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근처 유기농 케이크 집으로 갔다.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잔뜩 들어 있는 예쁜 파이를 하나 샀다. 한 손으론 둘째 아들 손을 잡고 한 손으론 파이를 들고 아래층 벨을 눌렀다. 경계하는 눈초리로 문을 열어주는 젊은 부부에게 활짝 웃으며 하지만 정말 미안해하며 파이를 건네줬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소개하면서 집에서 조용히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 줬다. 그러자 젊은 부부의 얼굴이 갑자기 온화해지면서 자기네가 오히려 미안하단다. 또 아이가 귀엽다는 칭찬까지 해준다.

이튿날 문 앞에는 예쁜 카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베리파이가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물론 미국 사람들이 다 이렇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다른 아파트에서는 누군가 우리 집 소음에 대해 아주 길게 조목조목 적어 직접 붙여 놓은 '경고장'을 본 적도 있다.

요즘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생긴 다툼에 대한 뉴스를 보면 정말 안타깝다. 우리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직접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거나 인터폰으로 말하지 말고, 쪽지를 붙여 보는 것. 그냥 이웃이라고만 밝히고 말이다. 말보다 글은 훨씬 감정이 정리되고 순화되어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가 쪽지를 붙였는지 CCTV 좀 보자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