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 이현서가 강연하는 모습

탈북 여성 이현서(33)씨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북한은 '지상낙원' 이었다. 이씨 가족이 그럭저럭 ‘먹고살 만’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이씨 가족은 살아남았다.

이씨가 ‘지구 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인 줄만 알았던 조국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1995년, 열다섯살 때였다. 당시 이씨 어머니는 갈 곳 잃은 소녀를 집에 데려왔다. 소녀의 손에는 편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이씨는 지난달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행위예술센터에서 열린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기적 같은 탈북기’를 소개했다. 이씨는 글로벌 오디션을 통해 TED 연사로 뽑혔다.

이씨는 일곱 살 때 처음 공개처형을 목격했지만, 북한의 실체를 알아채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이씨는 이날 강연에서 “압록강 근처에 살았는데 밤이 되면 ‘이쪽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저쪽(중국쪽)은 왜 이렇게 밝을까’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린 시절 탈북하려는 과정에서 숨지거나 살해된 북한 주민들의 시체가 압록강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종종 봤다.

이씨는 15세 때 국경을 넘었다. 북한 국적임을 숨기고 10년을 중국에서 살았다. 탈북자란 사실이 탄로 날까 봐 이씨는 늘 마음을 졸였다. 이씨는 “북한 주민들이 살기 위해 중국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다니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2008년 한국에 온 이씨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빼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모은 돈과 한국에서 받은 정착금을 털었다. 이씨는 북한에서 가족을 데리고 나온 뒤 2주간 버스를 타고 중국을 가로질렀다. 라오스에 도착한 이씨 가족은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진입하기 직전 경찰에게 붙잡혔다.

벌금을 내면 풀려날 수 있었지만, 이씨 수중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처지에 놓인 이씨는 경찰서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정을 말하자 그 남자는 근처 현금지급기에 가 돈을 빼서 이씨에게 줬다.

이씨가 그에게 물었다. “왜 내게 호의를 베푸느냐”고. 그는 “당신을 돕는 게 아니라 북한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TED 강연에서 “내게 일어난 기적이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도록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며 발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