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퇴임 이후 계속해서 빨간 구두를 신을 지에 대해 숙고를 한 뒤 결국 신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애틀랜틱지가 27일 온라인판에서 전했다.

빨간 구두가 현직 교황이 아닌 사람이 신기에는 너무 화려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교황의 구두가 명품 레이블인 프라다 제품이라는 취임 초기의 루머도 교황의 결정에 한 몫을 했다. 실제로 프라다 제품은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비슷한 루머는 아직도 떠돌고 있다.

재임기간 동안 베네딕토 16세의 ‘명품 취향’은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의 소박한 취향과 대비되며 수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가톨릭 전문 블로거들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 취임 후 2005년 선종 때까지 단 한 번도 화려한 색의 빨간 구두를 신지 않은데 비해 베네딕토 16세는 명품의 의심이 가는 빨간 구두와 명품 수제 선글래스 등을 즐겨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베네딕토 16세가 빨간 구두를 포기한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중세 이후 최초로 자발적인 사임결정을 한 베네딕토 16세는 콘클라베를 코앞에 둔 지금도 차기 교황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림자 교황’의 역할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림자 교황으로 ‘숨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시선을 철저히 피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때 빨간 구두는 너무 눈에 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교황에게 있어서 빨간색이 가지는 상징성은 매우 크게 받아들여져 왔다. 고대 로마 이후로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을 관통하는 동안 기독교 세계에서 빨간색을 의상과 신발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단 3명 뿐이었다. 로마 황제와 황후, 교황이다. 현실적인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황제가 사라진 시대에 빨간색의 적통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는 교황 밖에 남지 않았다. 빨간 색깔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권위주의적인 아우라를 걷어 내기 위해 중세 교황 비오 5세는 교황의 상징색을 빨간색에서 흰색으로 모두 바꿨는데 이 때 유일하게 살아 남은 빨간색 상징물이 바로 교황의 구두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마지막 권위의 상징물을 ‘포기’함으로써 더 큰 것을 얻기를 원했다는 분석도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일반알현에 이어 28일 추기경단과의 만남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퇴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