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 공부가 아니라면 뭐든 재밌다.
□ 짜증과 잠이 늘어난다.
□ 자만심과 좌절감이 수시로 교차한다.
□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 성적표에 쓰인 성적을 믿지 않는다.
위 목록은 올해 명문대 합격증을 거머쥔 2013학번 5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일명 '고3병(病)' 진단 체크리스트다. 실제로 큰 시험을 앞둔 수험생은 '질병을 방불케 하는'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위 증상의 상당수가 '내 얘기'라고 생각되는 예비 고 3이라면 같은 과정을 먼저 거친 선배들이 제안하는 '증상별 고3병 극복법'을 참조해 해법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증상1ㅣ자만 혹은 무기력
나만의 '마인드컨트롤' 방식 찾아야
김유라(고양외국어고 졸, 원광대 치의예과 입학 예정)씨는 "고 3 10월 한 달이 수능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9월 모의고사(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행) 당시 수험 생활을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이 나왔어요. 이후 '다 끝났다'는 생각에 공부를 쉬엄쉬엄 하기 시작했죠. 가장 자신있었던 외국어 영역 공부는 학습 계획표조차 세우지 않았을 정도로요. 결국 그해 치른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완전히 망쳤어요. 특히 외국어 영역 성적은 3등급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박지호(서울 휘문고 졸,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입학 예정)씨는 "입시를 너무 걱정하면 오히려 자만심이 커진다"는 이색 분석을 내놨다. "고 3 후반은 가장 나태해지기 쉬운 시기예요. 성적이 잘 나오면 쉬어도 될 것 같아서, 성적이 안 나오면 결국 원하는 대학에 못 갈 것 같아서 각각 공부를 손에서 놓죠. 이 같은 증상은 수능일이 다가올수록 심해집니다. 일부는 부정적 생각을 떨치려 '(이제껏 본 모의고사 중) 가장 높았던 점수가 진짜 내 실력'이란 착각에 빠지기도 해요."
이럴 때 중요한 건 점수에 상관없이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다. 윤영우(서울 서라벌고 3년,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입학 예정)군은 "시험을 망쳤을 땐 '바닥을 쳤으니 이젠 올라갈 일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귀띔했다. 김준휘(서울 서라벌고 3년, 서울대 경영대학 입학 예정)군은 지난해 10월 수시모집 1차 전형에서 세 차례나 거푸 떨어졌다. 당시 그는 남다른 마인드컨트롤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일이 잘 안 풀릴 땐 대중목욕탕을 찾아요. 머리에 찬물을 끼얹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자꾸 되뇌이며 마음을 다스리죠."
증상2ㅣ공부, 해서 뭐하나
최선의 동기 부여는 '진로와의 연계'
박지호씨는 고 3 되던 해 '대학 입시 공부가 내 인생의 전부일까?'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는 고 1 때만 해도 맹장수술일 이튿날 중간고사를 보려고 등교했던 '독종'이었다. 하지만 이후 공부가 힘에 부칠 때마다 기술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 성공한 명장, 비명문대 출신 사법고시 합격자 등의 사례를 접하며 마음이 흔들렸다.
전희주(서울외국어고 졸,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입학 예정)씨는 단 한 차례의 시험으로 대입 여부가 결정되는 우리나라 입시 체제가 불만이었다. 김준휘군은 고 2 기말고사 직후 '공부하는 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한 후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 법조인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선 '평생 법조인으로 살 수 있을까?'란 의문이 맴돌았다.
박씨가 공부에 다시 열중한 건 재수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학생 신분에서 꿈을 이루려면 수능 공부만큼 효율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공부에 대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김군은 아버지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끝에 경영학과 지원을 결심했다. "아버지는 제게 '하고 싶은 걸 해야 훗날 후회하지 않는다'고 충고해주시더군요. 이후 아버지의 추천 영화 '제리맥과이어'(1996) 속 스포츠에이전트에 관심을 갖게 되며 관련 학과인 경영대학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죠. 그랬더니 공부에 대한 흥미도 되살아나더라고요."
증상3ㅣ이유 없는 히스테리
공부에 더 집중… 의식적 노력 중요
"공부는 잘되고 있니?" "몰라요, 묻지 마세요!" 전희주씨는 고 3 때 걸핏하면 부모님께 이유 없이 화를 냈다. 김유라씨 역시 잦은 짜증으로 집안 분위기를 흐려놓곤 했다. 전씨가 그 시기를 극복한 비결은 '공부 시간 늘리기'였다. "재수를 시작한 후 평일엔 새벽 4시면 학원으로 향했어요. 집에 들어오면 오후 11시가 훌쩍 넘었죠. 대신 토요일엔 가족과 식사하며 평소 못다 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일요일엔 고교 동창과 만나 부모님께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공유하며 남은 스트레스를 완전히 풀었고요."
김씨는 고 3 때 수능 직후에야 자신의 눈치를 보는 부모님의 존재를 깨달았다. 이듬해 재수를 시작하며 그는 '억지로라도 웃자'고 다짐했다. "수험생이 되는 순간, '딸' 역할을 내팽개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의식적으로라도 부모님을 웃으며 대했더니 자연스레 관계가 회복되더라고요. '성적 올리는 게 효도하는 길이다' 생각하니 절로 공부에 집중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