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29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 후보자 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발표에 앞서 박근혜 당선인과 면담을 갖고 사퇴 의사를 전했다.

새 정권의 첫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장에 서기도 전에 사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 후보자는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여론의 검증(檢證)을 겪으며 지금 우리 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세대가 40년 전에는 누구나 별다른 의식 없이 행했던 일들을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잣대를 보며 세대 간에 건너기 힘든 격절(隔絶)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덕망 높았던 김 후보자가 그런 과정 속에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원했던 일도 아닌 총리 자리에 대한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본인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고 큰 허물이 없이 살아온 사회의 원로(元老) 한 분을 이렇게 떠나 보내는 우리 역시 적지 않은 손실을 본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 당선인이 인사비밀이 새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다 보안(保安)을 우선한 데 있을 것이다. 모든 나라 모든 대통령이 인사의 비밀이 지켜져 인사가 발표됐을 때 국민이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대통령제를 우리보다 170년 가까이 앞서 실시한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조각(組閣)과 개각(改閣) 과정의 상당 부분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노출하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통령 당선인 또는 대통령의 나라 사랑의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하다 해도 그의 판단이 상식적 국민 판단보다 반드시 옳고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의 인선(人選)을 반의도적(半意圖的)으로 언론에 노출해 행여 인사권자의 판단에 있을지도 모를 미비점(未備點)을 여론에 비추어 사전에 보완하려 한 것이다. 사실 인사가 일단 발표되고 나면 신선함의 효과란 며칠을 지탱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국사(國事)의 어려움을 정리하고 헤쳐나가는 지명된 사람의 능력이다.

검증을 통해 드러난 문제와는 별개로 김 후보자가 과연 박 당선인이 '책임 총리제' 공약을 옮기는 데 최적격 인선(人選)이었느냐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김 후보자는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거치며 법조계에서 존경받아 온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연령과 건강을 고려할 때 새로 출범하는 정부, 더구나 총리실을 비롯한 16개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는 시점의 총리직을 맡아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대통령과 이견을 조율하고 내각을 지휘하는 격무를 감당할 수 있겠는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만일 박 당선인이 총리 후보 인선에 앞서 몇몇 식견(識見) 있는 인사들과 자신의 인사 구상에 관해 의견만 나눴더라도 그런 지적이 제기됐을 것이다.

박 당선인이 취임과 동시에 내각을 출범시키려면 20일가량이 소요되는 인사 청문 과정을 고려해 2월 5일까지는 장관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물은 찾기 힘들고, 인사 검증 시스템은 불완전하며, 시간은 촉박하다. 이제 당선인과 당선인을 만든 여당은 합심(合心)해서 정부의 공적(公的) 인사 검증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가며 새 정부의 출범 일정에 맞춰 인사를 대과(大過) 없이 마무리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이번 인사 파문을 우연(偶然)이 마련해준 재출발과 자기 교정(矯正)의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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