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제약업체 3곳과 임직원 18명이 의사들에게 자기 의약품을 더 많이 처방해달라고 45억원어치 리베이트를 건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 제약사는 전국 병·의원 의사 200여명을 선별해 한도액 200만~1억원의 회사 법인카드를 제공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이 카드로 고급시계·돌침대·가전제품을 사고 해외 여행비·자녀 학원비에 쓰면서 이 회사 의약품을 경쟁사 제품보다 많게는 세 배까지 처방했다.

정부는 2010년 의약품 리베이트를 뿌리 뽑겠다며 준 쪽과 받은 쪽을 다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했다. 이듬해엔 문제가 된 의약품에 대해 보험급여를 취소하고 관련 의사·약사 면허를 정지 또는 취소시키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쌍벌제 이후에도 적발된 의사와 약사가 6400명이나 된다. 이번 대기업 제약사도 회사 법인카드를 공공연히 줘 오다 쌍벌제가 시행되자 전국 지점장 명의 법인카드를 주말에 빌려줬다 주초에 돌려받는 편법으로 뒷거래를 계속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검찰이 수사해 보건복지부에 통보한 리베이트 의사가 3000명이 넘지만 실제 면허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받은 사람은 170여명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백 년이 가도 제약사와 병원 간 거래가 맑아질 수 없다. 일본도 몇십 년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 1990년대 초 관련 대학·종합병원 의사들을 가차없이 구속하고 의사면허를 취소하고 실명과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고 나서야 악습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리베이트는 의사와 제약사 사이 윤리적 문제일 뿐 아니라 의약계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병원에서 동네 병원에 이르기까지 약제비의 10~20%를 뒷돈으로 받아 직원 월급이나 부족한 운영비로 쓰는 것이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죄의식 자체가 없다. 일부 제약사들은 병원 인테리어 공사비, 비싼 의료장비 값, 병원 광고비를 대신 내주는 걸 당연히 할 일로 여긴다. 의료계는 보험 수가가 너무 낮아 진료 수입만 갖고는 병원 운영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제약사들은 값싼 복제약만으로 극심한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는 처지라 생사(生死)를 쥔 병원 쪽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의약계의 자정(自淨) 노력이 앞서야겠지만 지금 보험 수가(酬價)가 적정한지도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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