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 '감내카페' 앞.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권을 오르내렸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모와 아이들, 연인, 친구…. 커다란 마을 지도, 카메라를 들고 입김을 뿜으며 꼬불꼬불 가파른 골목길을 순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생큐" "스미마셍" "빛의 집이 어디예요?"….
6·25 전쟁 후 피란민들이 정착해 이루어진 이 동네는 3~4년 전만 해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갈수록 빈집은 늘던 산복도로 달동네 중 하나였다. 관광객은 당연히 없었다.
이런 곳이 3년3개월 만에 부산을 대표하는 '투어 명소'로 탈바꿈했다. 2009년 5월 시작된 이 변신은 본지에도 보도(2009년 10월 7일 A11면)된 바 있다. 당시 진영섭(55)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대표, 이명희(49) 동서대 디자인학부 교수 등 지역 예술가들이 부산 사하구와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 지원금 1억원을 받았다. 진 대표는 "동네의 특성을 살리되 주민들이 행복한,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구청과 예술가들은 '달콤한 민들레의 속삭임' 등 동네 곳곳에 10개의 조형물을 설치했다. 2010년엔 5~10평짜리 동네 곳곳의 빈집들을 사들여 카페·갤러리로 개조했다. '빛의 집' '어둠의 집' '평화의 집' '아트숍' '하늘마루' '북카페'가 들어섰다.
작년엔 갤러리·공방·강의실 등으로 이뤄진 주민 커뮤니티센터인 4층짜리 '감내어울터'를 개관했고,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등 7개의 조형물이 추가로 들어섰다. 감천 낙서갤러리 등 빈집 갤러리 3곳도 개설됐다. 동네 곳곳 벽면에 물고기 등 형상을 한 안내 화살표들이 붙었고, 골목 여기저기 예쁜 나무 화단이 만들어졌다. 달동네가 예술의 거리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이후 동네가 예쁘다는 소문이 돌면서 방문객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귀향(53) 사하구 창조전략계장은 "2011년 2만5000여명이었던 방문객이 작년엔 9만8000여명으로 4배 가까이로 늘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동네 인구(9600여명)의 10배가 됐다.
지난해엔 우간다·탄자니아 등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찾아와 이곳의 경험을 배워갔다. 이 동네의 경험이 수출되기도 한다. 이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한 진영섭 대표 등 10명은 작년 중국 하이난에 가서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해줬고, 올해는 베이징에 진출할 계획이다. 아트숍에서 일하는 김영미(43)씨는 "방학·휴가 기간엔 수많은 외국인이 몰려온다"며 "우리 동네가 국제 관광 명소가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동네가 명소가 되고, 골목상점이 늘어나면서 집값도 오르고 있다. 이 동네 빈집 값은 2009년 3.3㎡당 140여만원에서 200여만원이 됐다. 서울서 내려와 이 마을에 정착, 커피숍을 운영 중인 김정희(43)씨는 "앞으로 이곳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해 아예 정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달 전 가게를 개업한 이 동네 주민 유영현(68)씨는 "4~5년 전만 해도 젊은 사람 구경하기 힘들고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물었던 동네였다"면서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이 몰려오고 밤 풍경 체험을 하러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가장 큰 소득은 주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