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납업무는 법원이 지정한 은행에서만 볼 수 있는데, 우리 지역엔 이 은행 지점이 아예 없습니다."
충북 한 군 지역에 거주하는 김 모(57)씨는 지난해 12월 부동산 관련 소송에 대한 소송인지대를 납부하기 위해 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도회지로 나가야 했다. 인지대는 해당 법원이 지정한 은행에 돈을 내고 인지대 납부영수증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김씨의 경우 청주지법의 지정 은행인 신한은행에 인지대를 납부해야 하지만, 김씨가 사는 군 지역엔 신한은행 지점이 단 한 곳도 없다.
소송은 복잡하고 힘든 과정일 수밖에 없다. 관할법원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僻地)의 주민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정 은행까지 도시 위주로 지점망을 갖춘 은행을 선정해 지점이 없는 군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소송 당사자들은 법원이 지정한 은행에서만 공탁금 입출금, 보관금 납부, 송달료 납부 등 업무를 볼 수 있다.
전국 18개 지방법원 중 13곳이 신한은행을 지정 은행으로 삼고 있다. 대구·광주·울산지법 등 신한은행과 지역 은행을 병행 지정한 경우도 있지만, 신한은행만을 지정한 지법의 업무를 보기 위해선 신한은행을 찾아가야 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법원의 전체 공탁금 중 약 74%인 4조4440억원이 신한은행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방에서 최근 소송을 제기한 박모(53)씨는 "법원이 특정 은행만을 지정해 시골 사람들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일도 법무사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며 "우체국과 농협처럼 벽지에도 지점망을 갖춘 금융기관에서도 수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 측은 법원 지정 은행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공탁업무 등 복잡한 법원 수납업무의 특성상 전문성을 갖춘 은행을 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탁금·보관금·송달료 납부업무는 관련 지식의 보유, 직원에 대한 철저한 교육, 법원의 시스템과 연계된 전산시스템의 설치 등이 필요하다"며 "업무의 안정성 때문에 모든 은행으로 수납기관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충북 주민 김씨는 "지점이 없는 지정은행 때문에 벽지 주민들이 차별을 받는 셈"이라며 "사법행정 서비스의 개선 차원에서도 지정 은행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