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택배'가 마약의 유통 수단으로 악용됐다. 보따리상처럼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고속버스 택배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특성 때문에 그동안 범죄에 활용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13일 필로폰 4g을 사고판 뒤 투약한 혐의로 정모(42)씨 등 3명을 구속하고 이모(44)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마약을 포함한 전과가 11~27건에 이르는 이들이 필로폰을 주고받는 유통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고속버스 택배였다.

구매책인 정씨는 2011년 8월 해외에서 들여온 필로폰을 부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부쳤다. 서울에 사는 중간판매책 이씨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나와 필로폰을 직접 받아간 뒤 이를 다시 되팔았다. 경찰 관계자는 "익명성이 보장된 고속버스 택배가 마약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 거래하는 번거로움을 없앴다"고 말했다.

고속버스 택배는 국내에 고속버스가 도입된 이후 수십 년간 이뤄졌다. 버스에 짐을 실어 보내고 도착지에서 다른 사람이 이를 받아가는 구조다. 이 때문에 상대방 주소지까지 배달하는 다른 택배와 달리 정확한 주소지를 기입하지 않아도 된다. 운송장에 이름을 적지 않고 운송번호만으로 수화물을 주고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13일 고속터미널에서 만난 한 직원은 "원칙대로라면 물건을 받을 때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지만 운송번호만 알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물건을 보내거나 받는 사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안 남겨도 택배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속버스 택배는 주소와 연락처를 기입해야 하는 다른 택배와 달리 문제가 있는 물건을 보내다가 추적당할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10년 고속버스 택배의 매출은 146억원. 하지만 현행법상 고속버스 택배는 불법이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18조는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는 여객 운송에 덧붙여 우편물, 신문, 여객의 휴대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수화물을 운송해도 된다는 법적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신고가 접수되면 버스회사들은 건당 18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왔다. 법적 규정이 없으니 관리 기준도 없는 것이다.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들어오자마자 짐을 내리고 있다. 기자가“신분증 없이 물건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묻자 직원은“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런 성격 때문에 과거에도 고속버스 택배는 범죄에 활용된 일이 있었다. 최근 경남지방경찰청이 입건한 스마트폰 장물 사범들은 전국 각지에서 확보한 스마트폰을 고속버스 택배를 이용해 국내 매입 총책에게 보냈다. 이들은 이런 방법으로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경남 지역에서 승객들이 택시에 두고 내린 스마트폰 2326대를 사들여 중국에 밀수출했다.

국토해양부는 고속버스 택배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소(小)화물 운송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국토해양부는 "고속버스 택배 서비스가 범죄에 이용될 수가 있지만 일반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만큼 단점을 보완하면서 유지할 것"이라며 "대신 관리 기준을 명확히 하고 엑스선 투시기 등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