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뮤지컬은 무대라는 제약 때문에 소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레 미제라블'도 같은 처지였다.
소설에서 가난한 미혼모 팡틴은 공장에서 해고된 후 딸 코제트에게 보낼 돈이 부족하자 앞니를 뽑아서 판다. 머리카락이 잘리고 앞니 두 개가 빠진 팡틴은 흉측한 몰골로 거리를 돌아다닌다. 독자는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섬뜩하게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머리카락만 팔고, 영화에서는 머리카락을 판 후 어금니를 빼는 것으로 나온다. 주인공의 얼굴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는 뮤지컬과 영화에서는 여주인공 앞니를 빼는 건 부담스러운 설정. 특히 배우가 독창곡을 부를 때마다 클로즈업 화면으로 크게 확대하는 영화에서는 어금니를 뺀 것으로 바꿔 카메라가 들이대도 흉하지 않게 했다.
길거리 소년 가브로슈가 사악한 테나르디에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영화나 뮤지컬만 본 관객은 절대로 알 수 없다. 테나르디에가 내버린 아들 가브로슈는 에포닌의 동생이다. 가브로슈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두 남동생을 거리에서 만나 혈육인 줄도 모르고 하룻밤 재워준다. 그것이 피붙이 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위고는 이런 장면을 무심한 듯 심어놓아 사회적 비극성을 강화했지만 간단한 줄거리를 써야 하는 뮤지컬과 영화는 이 부분을 삭제했다. 또 소설과 영화에서는 에포닌이 마리우스를 구하고 죽지만 뮤지컬은 날아온 총탄에 우연히 맞는다.
자베르가 가브로슈의 시신에 훈장을 달아주는 장면도 영화에만 추가된 부분이다. 혁명군에 맞섰던 '자베르의 회개'를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연출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