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인터넷에서 '뱅뱅 이론'이 유행이다. '뱅뱅'은 국내 청바지 브랜드이다. 하지만 뱅뱅 이론은 패션 이론이 아니라 정치 이론이다.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당신을 위해 그 이론을 소개하면 이렇다.
30대 초반인 '뱅뱅 이론' 창시자(딴지일보 '춘심애비')는 우선 자기의 취향에 대한 커밍아웃으로 글을 시작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닉스나 리바이스 같은 청바지를 사고 싶어 했고, 디젤 같은 30만원대 청바지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 몇 번 산 적도 있지만, 돈 쓰는 건 싫어해서 거의 대부분의 옷을 동대문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하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뱅뱅은 입어본 적이 없고, 당연히 매장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고 고백한다. 차라리 시장에서 2만원짜리 상표 없는 청바지를 사더라도 값싼 브랜드인 뱅뱅은 사지 않는 감성이란다. 한마디로 남들 보기에 창피해서 무시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대목에서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뱅뱅의 연매출 규모를 알고 정신이 아득해졌다는 것이다. 수입과 국내 브랜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청바지 매출 부동의 1위였던 것이다. 실제로 뱅뱅은 2012년에도 매출 2300억원가량으로 1위를 차지했다. 리바이스나 캘빈클라인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는 1000억원대 수준이다.
'뱅뱅 이론'의 창시자는 이제 반성을 시작한다. 도대체 자기 주변에서는 단 한 명도 뱅뱅을 입지 않고, 또 시골에 계신 할머니와 친지들도 아예 '시장 패션'을 구매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깨달음이 하나 더 있다. 나는 뱅뱅을 입는 사람을 몰랐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섬뜩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닉스나 리바이스나 디젤 같은 고급 브랜드를 몰라서 안 사 입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는 나만 잘난 게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4·11 총선과 12·19 대선에서 자기가 투표한 정당과 후보가 연거푸 패배한 이유를 여기서 발견한다.
미국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랭크는 저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부자들의 정당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건 모순이며, 이 모순적 선택은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전략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분석이지만, 그가 놓친 대목이 있다. 수수한 옷차림을 하는 사람들, 소탈하고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단지 계급적 이유만으로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목청을 높이지는 않지만 우물의 바깥에서 세상을 바꾼답시고 큰소리 내는 사람들, 자신만이 선하거나 옳다고 거들먹거리는 우물 안 개구리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2013년은 뱀띠 해다. 보통 뱀은 혐오의 상징이지만, 탈피의 고통이 있어야 새것을 얻는 법이다. '뱅뱅 이론'이 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교훈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허물을 벗는 뱀의 겸허한 자세에서 정치 지도자들과 우리 모두 깨달음을 얻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