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조선일보DB

여학생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면서 여학생 뒤에서 몰래 바지를 내리고 함께 사진을 찍은 '변태 사진사'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가 여학생들 몰래 '음란사진'을 찍은 것은 인정됐지만, 이를 처벌할만한 마땅한 법 조항이 없었다.
 
서울고법 형사11부(재판장 박삼봉)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찍은 혐의로 기소된 사진사 최모(42)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평택 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최씨는 여학생들이 자기 사진관에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을 때, 학생 뒤에 몰래 가서 바지를 내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타이머를 이용했고, 10초 이내의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최씨가 자기 뒤에서 이런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최씨는 여학생들에겐 정상적인 증명사진을 따로 찍어 건넸고, 본인이 함께 찍은 사진은 별도로 컴퓨터에 보관했다. 이렇게 최씨 몰래 사진이 찍힌 여성은 1년간 20여명, 사진은 수백여장에 달했다.
 
최씨는 3월 친구와 함께 사진관에 갔다가 이 장면을 보게 된 한 여학생(15)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최씨는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모든 사진을 삭제했지만, 검찰이 파일을 복구하자 5월 범행을 자백했다. 자백 이틀 뒤 최씨는 대전 서구의 한 팬션에서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심모 양(15) 등 3명과 함께 자살을 기도했지만, 심양만 숨지고 본인은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 이후 검찰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한 혐의와 자살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최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거로 제출된 사진과 동영상은 최씨가 아동·청소년 근처에서 그들 몰래 본인의 신체 일부를 노출한 것일 뿐, 아동·청소년이 직접 성(性)적인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최씨가 찍은 사진은 법이 정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은 아동·청소년이나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주체가 돼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담은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최씨가 여학생들 뒤에서 몰래 사진을 찍었을 뿐, 여학생들이 성적인 행위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씨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형벌법규 해석은 엄격해야 하고, 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해서는 안 된다"며 법이 없으면 처벌도 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를 강조했다.
 
앞서 1심은 "검찰이 공소장에 음란물을 '사진 수백장'으로 표현하는 등 혐의가 구체적이지 않다"며 공소 기각했다.

최씨의 자살 방조 혐의에 대해 1심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2심은 항소기각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