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4시쯤 찾아간 서울 영등포구 A 초등학교. 경찰이 특별 방범 구역으로 지정한 이 학교 인근은 지난 석 달간 폭행 30여건, 절도 20여건이 발생했을 정도로 범죄에 취약하다. 학교 안에선 학교 폭력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학교 건물 곳곳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 10여대와 학교 후문 쪽에 있는 회전식 방범용 CCTV는 사실상 제구실을 못 하고 있다. 화질이 모두 41만 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되는 휴대전화 카메라 화소(1300만 화소)의 약 30분의 1 수준이다. 41만 화소 CCTV는 밤에는 5m, 낮에는 15m 안에서만 얼굴 식별이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차량 번호판이나 범죄 용의자의 얼굴을 식별하긴 힘들다. 게다가 A 초등학교 후문 쪽 CCTV는 낙엽이 다 지지 않은 가로수에 정면이 가려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종종 이곳에서 범행 신고가 들어와 CCTV를 분석해도, 얼굴이나 차량 번호가 확인되지 않아 거의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2010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8세 여아가 납치·성폭행당한 이른바 '김수철 사건' 이후 교육과학기술부 지침 아래 전국 각 학교의 CCTV 숫자는 대폭 늘었다. 교과부에 의하면 2010년 6만7169대였던 전국 학교 내 CCTV 숫자는 올 6월 10만53대로 49%나 증가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중 상당수는 화질이 너무 나쁘고, 설치 장소 근처의 가로수나 조명 때문에 사물을 알아보기 어려워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감사원이 서울·인천·강원·제주 등 4개 시도의 1707개 학교에 설치된 CCTV 1만7471대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12일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조사 대상 CCTV 중 97%에 이르는 CCTV 카메라 1만6922대가 50만 화소 미만이었다. 100만 화소 이상 CCTV는 203대(1.1%)에 불과했다.

또 조사 대상 1707개 학교 중 319개(18.6%) 학교의 CCTV가 부적절한 장소에 설치돼 녹화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340개 고등학교의 절반에 가까운 161개교에선 적외선 촬영 CCTV가 없어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불가능했다. 교내나 학교 인근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하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학교 CCTV가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CCTV를 설치할 때 카메라 화소에 대한 규정이 없었고, 제한된 예산으로 설치 대수를 늘리려다 보니 생긴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교 밖의 방범용 CCTV도 낙제점이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강기윤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방범용 CCTV는 올 8월 말 기준 5만8470대인데, 이 중 62.8%인 3만6738대가 41만 화소로 나타났다. 범죄 용의자 얼굴이나 용의 차량 번호판조차 안 보이는 CCTV가 많고, 심지어 고장이 나 작동하지 않는 CCTV도 상당수다. 이 때문에 경찰은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5월 충남 아산시 2인조 금은방 강도 사건에서 CCTV에 찍힌 용의 차량 번호가 식별되지 않아 경찰은 버스 블랙박스 등을 일일이 확인한 끝에 20여일 만에 범인을 붙잡았다. 또 올 9월 대구의 한 귀금속 거리에서 발생한 오토바이 날치기 사건은 현장 주변에 설치돼 있던 CCTV 6대가 모두 고장 나 있어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올해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 접수된 CCTV 영상은 총 1574개로, 이 중 80% 이상이 영상에 찍힌 사물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어 각 경찰서가 선명화 작업을 요청한 것이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방범용 CCTV로 용의자를 특정해야 하는데 모자만 써도 얼굴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감사원은 이날 교과부 장관에게 각 학교에 설치된 CCTV 설치·운용 실태를 파악해, (CCTV 화소 기준 등에 관한) 적절한 운용 기준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