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에서 악랄한 수사관에 더 악독하게 맞서는 본두란 3형제의 둘째인 포레스트(톰 하디). 가장 남성미 넘치고 듬직한 캐릭터다.

할리우드에게 1920~1930년대 미국의 금주법 시대란 갱스터 영화의 마르지 않는 샘인 모양입니다. 이 시대를 배경삼은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ies)를 본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존 힐코트 감독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Lawless)이 또 국내 개봉됐습니다. 서부 영화와 함께 금주법 시대 영화는 할리우드가 잊을만 하면 꼭 한편씩 내놓는 영화 장르가 된 것 같습니다.

대체로 금주법 시대 영화들이란 시카고 일대를 배경으로 밀주 유통에 개입한 갱스터들끼리 벌이는 주도권 쟁탈전을 다룬 경우가 많았지만, ‘로우리스…’는 조금 다릅니다. 밀주 빚는 마을인 버지니아주 프랭클린 카운티가 배경입니다. 유통 공간에서 생산지로 무대를 옮긴 것이죠. 영화 속 싸움도 갱들끼리의 싸움이 아닙니다. 밀주업을 하는 본두란 3형제와 새로 부임한 수사관이 벌이는 피의 대결을 영화의 중심에 놓습니다.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은 갱스터영화임에도 로맨스를 맛깔나게 밀어넣었다. 극중 본두란 형제의 막내인 잭(샤이아 라보프)이 베르사 미닉스(미아 와시코스브카)에게 구애하는 대목.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로우리스…'에서 1931년 새로 부임한 특별수사관 찰리 레이크스(가이 피어스)는 밀주를 눈감아 주는 댓가로 밀주 생산자들에게 거액의 상납금을 요구합니다. 대부분의 밀주 제조 농민들은 굴복하지만, 하워드(제이슨 클락) 포레스트(톰 하디) 잭(샤이아 라보프)등 본두란 3형제들은 다릅니다. 수사관의 '더러운 거래' 제의를 걷어찹니다. 둘째 포레스트는 수사관 찰리에게 모욕까지 줍니다. 분노한 찰리는 악랄한 방법으로 3형제의 가업인 밀주 사업의 숨통을 짓누르고, 형제는 이에맞서 찰리와 처절한 대결을 벌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입니다. 90여년전 그 시절의 털털거리는 자동차들, 무섭게 불을 뿜는 톰슨1928 기관단총, 고풍스런 재킷 등 꼼꼼한 고증들이 우리를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데려갑니다.

금주법 시대로 무슨 영화를 더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또하나 선보인 셈입니다. 도대체 미국영화는 왜 그토록 반복해서 이 불안과 혼돈의 시대를 추억하는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꽉 짜인 시대가 아니라 위험했고 드라마틱한 시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해진 것도, 안정된 것도 별로 없었던 세상이었고 법은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맨주먹으로 자기 운명을 직접 개척하며 살아가야 했던 다이내믹한 시대였습니다.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에서 악랄하게 밀주업자들 숨통을 죄는 특별수사관 찰리 레이크(가이 피어스).

1920년 1월부터 시작돼 1933년 끝난 미국의 금주법 시대는 비상식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금주법은 술을 쫓아낸 게 아니라 술을 지하 암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유통되게 만들었습니다. 비상식적 법률이 비합법이 설칠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죠. 온갖 범죄 조직이 날뛰고 권력과 갱스터들 사이에 음모와 시기, 협잡의 드라마가 이어졌으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인 시대이고 소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금주법시대 영화에 등장하는 대결이란 '나쁜놈 대 좋은 놈'의 판에 박힌 대결만은 아니어서 더 흥미롭고 영화적입니다. '로우리스…'도 그렇습니다. 법을 어기고 술을 만드는 3형제는 상식적 기준으로는 정의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단속하겠다는 경관이 정의의 편이 되어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 않습니다. 공권력이 썩어빠졌기 때문입니다.

돈을 안 준다고 악랄하게 농민을 괴롭히는 수사관보다는 '오랜 세월 이어온 가업인 술 양조를 누가 뭐래도 그냥 하겠다'며 더러운 뇌물 못 바치겠다고 뚝심있게 버티는 3형제 편에 관객의 감정이 이입됩니다. 법을 내세워 돈을 뜯어내는 기생충 같은 경찰들이 차라리 악당입니다. '로우리스…'는 굳이 따지면 나쁜 밀주업자 형제들이 '훨씬 더 나쁜' 수사관들과 싸우는 영화인 셈입니다.

'로우리스:나쁜 영웅들'에서 본두란 삼형제 중 둘째 포레스트(톰 하디)를 사랑하는 매기 보퍼트(제시카 차스테인).

영화가 보여주는 건 제목 그대로 '법이 없는'(lawless) 세상에서도 혼란과 공포를 딛고 살아 남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영화 속 3형제 중에서도 둘째 포레스트가 강한 매력을 풍깁니다. 그는 힘이 약해 남에게 얻어 맞은 동생 잭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내를 만드는 건 힘이 아니야. 끝까지 가보겠다는 배짱이지."

영화 속 싸움을 지켜보면, 금주법시대 영화가 풍기는 매력적인 향기 하나가 진하게 느껴집니다.그 시대를 지탱해 간 거친 인간들의 남성미입니다.어릴 적부터 죽을 고비를 몇 번 씩 넘기고도 살아남았다는 3형제는 늘 "우린 죽음도 이겨냈다"는 말을 입버릇 처럼 뇌까립니다. 그들은 밀주 업자이지만 강하고 뚝심 있으며 자신들이 오랜세월 지켜온 가치를 그대로 밀어붙이는 담대함과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동에 남성다움이 넘칩니다. 교활하고 악독한 특별수사관이 폭력배를 시켜 본두란 형제의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자, 분노한 형제가 폭력배들의 고환을 잘라내는 복수 장면은 남자답지 못한 자들에 대한 본두란 형제 식의 응징입니다.

금주법 시대 영화엔 늘 불안과 자유가 세상을 함께 뒤엎었던 시절을 헤쳐나간 강한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찬 비바람도 묵묵히 견디며 온몸을 던져 나아가는 남자의 모습입니다. 현대의 도시에서 꽉 짜여진 시스템에 갇혀 한 치도 옴짝달싹 못하는 삶을 사는 어떤 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란 아련한 향수나 그리움 같은 것으로 다가갑니다. 금주법 시대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