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가 빚어낼 수 있는 예술성의 극한을 들려준다'는 평을 듣는 이병우(성신여대 교수)가 20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연다. 12년째 지속한 기획공연이지만 팬들 마음이 더욱 들뜨는 건, 그가 10년 만에 발표할 새 연주앨범 수록곡을 미리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에 나온 전작(前作) '흡수'는 6개 기타 줄에서 쏟아져 나오는 울림만으로 사람들 마음의 심연(深淵)을 뒤흔들었던 걸작이었다.
"작년 가을비 오는 어느 날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어깨 통증으로 무척 고생하며 3개월간 기타를 손에 잡을 수 없었어요. 앞으로 '기타 연주를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절박한 위기감이 엄습했죠. 이후 연주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 수시로 새 곡을 쓰고 연습과 녹음을 반복했습니다."
두 앨범 사이에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 건, '부업(副業)'으로 시작한 영화음악 감독으로서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져 그의 시간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스캔들' 등 숱한 대형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던 그는 "영화음악을 정신없이 만들다 보면 내 앨범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곤 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영화음악이 갖는 의미는 심대했다. "영화에서 음악은 장면 하나하나의 정의를 내려주고 극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한다"며 "저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이 세상 수많은 악기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것들이 어떻게 화합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했다.
그는 이번 공연이 끝난 뒤 커다란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2013년 1월 말부터 시작되는 평창 세계 동계 스페셜 올림픽(지적 장애인이 참가하는 올림픽) 개·폐막식 예술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미 가수 이적의 노래로 녹음을 마친 이 행사의 주제곡은 오늘 공연을 통해 처음 공개된다. "음악의 범주를 벗어나는 거대한 작업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이병우는 새 앨범에 대해 "'흡수'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어떻게 하면 가장 무겁고 어두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밝고 경쾌한 느낌으로 채워질 것 같다"고 했다. "과거의 앨범들은 너무 어려운 연주를 보여주는 데만 집중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에는 좀 더 여백이 강조된 작품이 될 듯합니다. 기타에서 나오는 소리로 수채화를 그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이병우는 1980년대 조동익과 함께 포크 듀오 '어떤 날'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짧지만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다시 팀으로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음악가의 공동작업이란 건 원래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이병우는 기타를 연주할 뿐 아니라 만들기도 한다. 울림통이 없는 날씬한 형태의 연습용 악기 '기타 바(guitar bar)'다. 그는 "악기를 오래 연주하면 누구나 지병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그렇다"며 "기타 연주자들의 건강을 생각해 최대한 가볍고 연주하기 편한 악기를 만들어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