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지로를 비롯해 지로의 식당에서 스시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요리사들. 오노 지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밥 짓기 생선자르기 등 여러 과정을 이끈다.

다양한 흥행작들이 즐비한 추석 극장가의 틈바구니에서 소리 소문 없이 개봉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스시 장인(匠人): 지로의 꿈’입니다. 도쿄에서 60여년 째 스시를 만들고 있다는 85세의 요리 명장 오노 지로에게 초점을 맞춘 이 작품엔 평생 한 우물을 판 음식 장인의 삶과 그의 혼(魂), 그가 이룩한 초밥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 필름이 시선을 붙든건 엄밀히 말하면 다큐로서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신인 감독 데이비드 겔브의 첫 장편이라는데, 그의 영화 내공(內功)은 아무래도 스시 명장의 내공을 따라잡기엔 조금은 벅차 보였습니다. 이만한 경지에 올라선 인물을 다루면서 짚어야 할 것을 빠짐없이 짚었다는 느낌보다는, 일본 초밥에 호기심을 가진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더 두드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무딘 이 감독의 카메라 아이(camera eye)를 통해서도 장인의 감춰진 성공 비결들이 여러 대목에서 포착돼 스크린에 번득입니다. 도쿄 긴자(銀座)의 지하에 위치한 ‘스키야바시 지로’ 라는 그의 초밥집은 의자가 10개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식당이지만, 1인분 스시 코스의 가격은 3만엔(약 45만원)부터 시작합니다. 한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수 없습니다.

세계적 레스토랑 전문서인 ‘미슐랭 가이드’는 이 ‘코딱지 만한’ 식당에 왜 5년 연속 최고등급인 별 셋을 줬을까요? 이 다큐엔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장인의 여러 가지 노력들이 소개됩니다. 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어 오며 정진한 끝에 성공을 이뤘다’는 식의 스토리나, “난 꿈에서도 스시 아이디어가 떠올라 잠에서 깨곤 한다”는 지로의 토로는 어디선가 본 듯 낯익어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좋은 재료를 확보하는 일에서부터 요리는 시작된다. 오노 지로가 츠키지 어시장에서 최고의 생선을 구입해 직접 식당으로 가져가고 있다.

나의 눈길을 붙든 건 생선을 만지는 모든 과정에서 이 초밥왕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비범한 마음 가짐이 담긴 태도였습니다. 스시를 쥐는 85세 지로의 표정과 동작은 의식(儀式)을 거행하는 사람 같습니다. 진지함을 넘어 거의 경건함에 가깝습니다. 다큐에서 음식평론가 야마모토는 “오노 지로는 스시를 만들 때 하도 엄격한 표정을 지어서 손님들 중 어떤 사람은 (맛은 최고인데)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는 말도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완벽을 향한 이 장인의 특별한 마음가짐은 그의 삶 곳곳에서도 드러납니다. 다큐의 첫 장면. 출근하는 오노 지로는 양 손에 흰색 면 장갑을 끼고 있습니다. 그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장갑을 늘 끼고 다닌답니다. 스시 요리사의 생명인 손에 상처가 나거나 지나친 햇볕을 받아 검버섯이 늘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지만, 한 켤레의 흰 장갑은 오노 지로의 몸 못지않게 마음을 다잡아 주는 물건 같습니다.

모든 일에 최고의 정성을 변함없이 쏟아붓는게 오노 지로의 일관된 자세입니다. 그는 심지어 전철 플랫폼에서도 매일 똑같은 위치에서 차를 탑니다. 좋게 말하면 한결같은 정진이고, 나쁘게 말하면 강박증입니다.

이 다큐에서는 잠깐의 사이를 두고 오노 지로와 그의 둘째 아들이 각각 새우스시 만드는 장면을 비추는데,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달라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나오는 둘째 아들은 뭉친 밥 위에 익힌 새우를 얹고 박력있게 꾹꾹 눌러 재빠르게 내는데, 아버지 지로는 ‘작은 병아리를 쥐는 것처럼’ 살금살금 스시를 쥡니다.

완성된 새우 스시의 모양은 아들 것이나 아버지 것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아버지 지로의 것이 더 맛있을 듯합니다. 최고의 맛, 지로가 말하는 ‘우마미(입안을 돋구는 향긋한 맛 )’란 여러 복합적 요소들이 작용해 빚어지는데, 손끝 기술을 넘어서는 마음의 자세가 맛에 미묘한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도쿄 긴자의 자기 식당에서 스시를 쥐는 85세의 오노 지로. 요리를 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진지한 의식을 거행하는 사람처럼 집중한다.

몇해 전 일본 TV에서 보았던 수제 소시지 장인의 요리 태도가 이 다큐의 화면 위에 겹쳐집니다. 생계가 어려워진 군소 식당 주인들에게 요리 대가들이 비밀스런 레시피를 특별히 전수해 주는 예능프로였는데, “마음을 담아 요리하지 않으면 맛은 나지 않는다”는 소시지 장인의 깐깐한 훈계가 도제식 교육의 전 과정을 압도합니다. 제자가 된 군소식당 주인이 칼로 자른 돼기고기 덩이들을 조리 테이블 아래에 놓인 바구니로 집어 던지자 장인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나옵니다. “야! 지금 쓰레기 버리냐. 그런 마음가짐으로 무슨 음식이 나오나!” 당황한 ‘제자’는 고기 덩어리들을 주섬주섬 도마위로 올렸다가 갓난 아이를 침대에 누이듯 바구니에 다시 차곡차곡 담습니다. 장인의 지시에 따라 “오이시쿠 나루”(맛있게 되어라)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기를 집어 던지든, 조심스레 쌓든 똑같은 고기인데 음식 맛에 무슨 차이를 만들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이 비범한 요리 장인과 평범한 요리사가 나뉘는 갈림길이라고 봅니다.

다큐 ‘…지로의 꿈’을 보고 있으면 이 장인의 진짜 무기는 손끝 기술이 아니라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려깊은 태도와 정성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느껴집니다. 그는 심지어 손님들이 자신의 음식을 최고의 만족감으로 먹게 하려고 왼손잡이 손님에겐 스시의 놓는 위치를 약간 왼쪽으로 옮겨놓고, 여자 손님들의 스시는 조금 작게 만들어 일행과 동시에 식사를 끝내도록 배려합니다.

오노 지로 쯤 되면 요리는 노동을 넘어 일종의 예술의 경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 지로의 꿈’은 예술 창작에 ‘예술혼(藝術魂)’이 요구되듯 최고의 요리를 위해서는 ‘요리혼’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아주 작은 걸 세심하고 예민하게 따지고 느끼는 일본 문화라는 토양이 오노 지로와 같은 그런 장인을 길러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