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대 박사 졸업생 10명 중 3명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서울대, 2011년 통계연보). 올해 처음으로 배출된 로스쿨 졸업자 100명 중 18명 역시 취업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교육과학기술부, 2012년 8월 기준). '화려한 스펙'만으로는 더 이상 바늘구멍 같은 취업 관문을 뚫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업이 앞다퉈 탐내는 인재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맛있는공부는 본격적 채용 시즌을 맞아 두산그룹·LG전자·CJ그룹 등 국내 3대 주요 기업 채용 담당자에게 직접 물었다. "요즘 귀사가 원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입니까?" 아울러 대기업 인사팀 출신 취업 컨설턴트가 귀띔하는 '취업을 부르는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도 정리했다.
두산그룹ㅣ비전공자도 전공 분야 관심 높으면 ‘합격'
"내가 좀 기다리지, 뭐." 지난해 하반기 채용 최종면접 당시 박용만(57) 두산그룹 회장은 KTX 고장에 따른 연착으로 면접에 지각한 신입사원 지원자를 30분간 기다렸다. 두산그룹이 인재 선발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에피소드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사람이 미래다'란 슬로건 아래 다양한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자질을 갖춘 인재라면 누구든 선입견 없이 등용하겠다'는 그룹의 방침은 최근 '전공 파괴형 직원 채용'으로도 이어졌다. 안재헌(43) 두산중공업 리크루팅팀장은 "지난해 하반기 채용 때 서울 소재 모 대학 외교학과 출신의 한 여성 지원자가 자신이 대학 1학년 때부터 에너지 분야에 얼마나 관심을 쏟아왔는지 입증하는 기록물을 200쪽 넘게 묶어 면접장에 나타났다"며 "에너지 관련 세미나나 포럼 등에 7년 이상 참여한 증빙 자료를 제출하며 자신의 관심사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데 채용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 말했다. 그 지원자는 입사식 때 신입사원 대표 선서 낭독자로 뽑히기도 했다.
안 팀장은 "모든 지원자는 입사가 결정된 후 소정의 직무 교육 과정을 거치며 훈련받는다"며 "따라서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원하는 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능력보다 본인(이 맡게 될) 업무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ㅣ"학벌 좋아야 일도 잘한다"는 건 옛날 얘기
김윤흥(39) LG전자 HR부문 인재개발실 채용팀 차장은 최근 몇몇 대학의 게임 동아리 탐방에 나섰다. ‘숨어 있는 원석’을 직접 찾아나서기 위해서였다. “공대 소프트웨어 관련 동아리에 가보면 그저 게임이 좋아 게임 개발에 빠져드는 친구들이 간혹 있어요. 그런 학생을 만나 얘길 나눠보면 하나같이 엄청난 내공을 갖춘 고수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졸업 학점은 잘해야 1.5점(4.5점 만점) 안팎으로 형편없죠.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건 이런 친구들이에요.”
김 차장은 "이제 기업들도 '학벌과 업무 수행 능력이 늘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씩 눈뜨고 있다"며 "우리 회사에도 같은 대학 서울캠퍼스와 지방캠퍼스 졸업생이 동시에 지원했다가 지방캠퍼스 출신 지원자만 합격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출신 대학에 따른 능력 차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LG전자는 앞으로도 지방 대학을 직접 방문하는 등 숨어 있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나갈 계획입니다."
CJ그룹ㅣ대체 불가능한 '명품 경험'으로 승부 걸어라
이정국(42) CJ그룹 인사팀 부장은 "우리 회사 신입사원 합격자는 대부분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특정 방향을 정한 후 △그와 관련, 유의미한 경험을 꾸준히 쌓아온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채용 당시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한 지원자가 미디어 계열사인 CJ E&M 방송사업 부문에 합격했습니다. 지원 분야와 전공은 전혀 무관했지만 평소 끼가 넘쳐 '팔도 모창대회'(MBC) '놀라운 대회 스타킹'(SBS)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가 하면 크고 작은 행사에서 MC나 VJ 등으로 활동한 이색 이력의 소유자였죠."
이 부장에 따르면 맡게 될 업무와 연관된 실전 경험도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된다. "외식 전문 계열사인 CJ푸드빌 합격자 중엔 대학생 때부터 요식업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를 종횡무진 누비며 스시 레스토랑 등 관련 업계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게 될 업(業) 자체에 열정을 갖고 의미 있는 경험을 쌓은 경우였죠." 그는 "CJ그룹이 '열정'과 '도전'을 중시하는 만큼 인재 채용 시에도 그런 경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현상은 아마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면접관이 알고 싶어하는 '직무' 얘기 담아라
-조민혁 취업컨설턴트가 말하는 '취업 부르는 자소서 작성 요령
“충분히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취업에 실패하는 후배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조민혁(35·사진)씨는 지난 2006년 포스코(POSCO) 채용팀에 입사해 면접관으로 근무한 '채용 전문가'다. 지난해 4월 포스코를 퇴사한 후 현재 윈스펙 아카데미 수석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그는 바쁜 일정을 쪼개 올 1월 '기적의 자소서'(조선북스)를 펴냈다. 신입사원 면접 노하우와 강의 내용, 실제 제자의 합격 사례 등을 녹여낸 이 책은 출간된 지 8개월 이상 지난 지금까지 수험서 부문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조 컨설턴트는 "서류 탈락자가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자기소개서를 단순히 '날 설명하는 서류'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접근 방식부터 틀렸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내가 쓰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나열하는 거예요. 잘 쓴 자기소개서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엮여 있습니다."
일례로 그는 현대자동차그룹 자기소개서 1번 문항('현대자동차 또는 해당 직무에 지원하게 된 동기')을 언급했다. "전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설명할 때 항상 '두괄식'과 '사례'를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지원자가 무작정 자기 얘길 제일 앞부분에 써버립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모시는 소나타를 타고 자라 현대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하는 식이죠. 하지만 채용 담당자에게 그건 별로 눈에 띄는 문장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직무 관련 사실'이에요. '현대자동차에 대한 내 관심을 바탕으로 추후 현대자동차그룹의 이런 부분에 이렇게 기여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해야 하죠. 진짜 두괄식은 그런 겁니다."
조 컨설턴트는 적지 않은 지원자가 자기소개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에 대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게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은 어떤 곳인지 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그냥 눈치 보며 대기업에 원서를 넣습니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데 타인의 생각을 헤아릴 리 만무하죠. 당연히 면접의 핵심 요소인 '팀워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주요 기업 면접에선 유난히 '(조직에 융화될 수 있는) 친화력'을 중요하게 본다. "실제로 모 기업은 면접 단계에서 몇 시간에 걸쳐 지원자를 '스트레스 상황'에 몰아넣습니다. 토론 상황에선 일부 팀원을 서로 맞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줘 당사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죠.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관찰하고 평가하려는 설정입니다."
'토익(TOEIC) 787점, 졸업 학점 3.6점'. 인터뷰 말미에 그가 제시한 지난해 상반기 국내 주요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채용 합격자의 평균 '스펙'이다. "화려한 스펙이 무조건 불필요하다는 얘긴 아닙니다. 스펙이 좋으면 당연히 서류 심사 통과 확률은 높아지겠죠. 하지만 그게 결코 최종 채용 단계까지 이어지진 않습니다. 취업 준비생이라면 무턱대고 스펙 쌓으려고 뛰어들기보다는 자신의 특성과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기반 위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