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호(동신대 간호학과 1년)씨는 전남 화순군의 집에서 학교가 있는 나주시까지 왕복 두 시간 거리를 통학한다. 버스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매번 가방에 책을 챙기지만 버스가 심하게 흔들리는 데다 저녁 시간이면 차내 조명까지 꺼져버리는 탓에 눈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학교 중앙도서관 로비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오디오북 기계를 발견했다. 누구든 무료로 사용하도록 학교 측이 마련한 장치였다. 이후 김씨의 등·하굣길은 '눈이 편안하고 귀는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한솔씨앤엠은 지난 2006년부터 국내 최대 오디오북 제작·유통 웹사이트 '오디언'(www.audien.com)을 운영해 오고 있다. 사업 시작 첫해 2184건이었던 오디오북 다운로드 건수는 올 상반기에만 3만5651건을 기록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한만재 한솔씨앤엠 기획운영팀 대리는 "운전·컴퓨터·스마트폰 등 눈 혹사할 일이 많은 현대인에게 오디오북은 간편하게 듣기만 해도 독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수단이란 점에서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 낭독’서 진화… 원서 공부에도 ‘딱’
문장을 밋밋하게 낭독하는 데 그치는 일반 오디오북과 달리 오디언엔 전문 PD가 있다. 이들은 여러 명의 성우를 등장시키고 음향 효과도 넣는 등 일종의 ‘연출’ 작업을 거친다. 조선 중기 장군 이순신(1545~1598)의 고뇌를 그린 김훈(64) 소설 ‘칼의 노래’ 오디오북엔 칼 소리, 파도 소리를 집어넣어 바다 전쟁의 긴박감을 되살렸다. 공지영(49) 소설 ‘도가니’ 오디오북은 동명의 영화에 악역으로 출연한 배우 장광(60)씨가 직접 목소리 연기를 펼치는 등 소리만으로 학교 내부의 적막한 분위기를 살려냈다. 이런 음향 효과 덕분에 독자, 아니 청자는 자연스레 내용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EBS 라디오 프로그램 ‘귀가 트이는 영어’ 진행자인 선현우(32) 토크투미인잉글리시(Talk To Me In English) 대표 역시 오디오북의 열렬한 팬이다. 해외 유학 한 번 안 다녀오고 8개 국어를 구사해 화제가 된 그에게도 외국어는 ‘매일 꾸준히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거지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큰 부담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오디오북은 선 대표에게 더없이 유용한 학습 도구다. 그는 “현지인의 발음을 익힐 수 있을 뿐 아니라 활자로 읽을 때보다 소리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걸 원서 오디오북의 장점으로 꼽았다.
선 대표는 "원서 오디오북은 '미리 듣기' 했을 때 70% 이상 알아 들을 수 있는 책으로 고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학습자 수준에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너무 어려운 책은 계속 들어봤자 시간 낭비예요. 또 소설보다는 자기계발서 같은 실용 서적을 권하고 싶어요. 외국어 실력을 늘리려면 '묘사'보다는 '설명'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거든요. 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스티븐 코비 글, 번역서 제목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추천합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It's All Too Much'(피터 월시 글, 번역서 제목 '뒤죽박죽 내 인생 정리의 기술')도 좋고요." 그가 원서 오디오북을 주로 내려받는 곳은 '오더블닷컴'(audible.com). 탑재 권수 측면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오디오북 웹사이트다.
◇시각장애인·문맹자 보듬는 '따뜻한 독서'
경기 군포시는 지난해부터 ‘책 읽는 군포’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대표적 행사가 일명 ‘군포의 책’ 선정 작업이다. 매년 한 권씩의 책을 선정, 오디오북으로 제작해 관내 독서 소외 계층에게 무료로 배부하는 게 주요 내용. 독서 소외 계층이란 시각장애가 있거나 시력이 약해서, 또는 까막눈이라 책 읽기에 어려움 겪는 이들을 말한다. 지난해와 올해 각각 선정된 책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 글·창작과비평사)와 ‘가시고백’(김려령 글·비룡소) 등 소설 두 권이었다.
강대석 군포시청 정책비전실 주무관은 “한 어르신이 ‘노인정에서 소일거리 할 때 들으니 적적하지 않아 좋다’고 말씀하실 때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디오북은 책에서도 소외당했던 이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독서’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책 읽는 군포’를 우리 시의 주력 사업 중 하나로 키워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