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연고도 없이 북에서 내려와 60여년 동안 모은 돈 100억원을 연세대에 기부한 김순전 할머니. “평생 못 배운 게 한이 됐다”면서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달 14일 모시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김순전(89) 할머니가 연세대 총장실 문을 두드렸다. 낯선 할머니의 방문에 의아해하는 교직원들에게 김 할머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기부하러 왔습니다. 내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가 밝힌 기부금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자택 등 4건의 부동산과 예금 등 100억원에 달했다. 김 할머니는 "굶기를 밥 먹듯 하며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못 배운 게 끝내 한이 됐어요.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내가 공부하는 것과 똑같은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1923년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딸이 무슨 공부고, 학교냐'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김 할머니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나도 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아무도 들어주질 않았어요. 아침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는 오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지요"라고 말했다.

6·25전쟁 통에 부모 형제와 헤어진 김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김 할머니 가족이 가진 건 덮고 잘 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서울에 정착한 김 할머니는 장사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김 할머니는 "버스비 아끼려고 후암동에서 동대문까지 매일 걸어 다녔어요. 말 그대로 배가 고프면 허리띠를 졸라맸지요"라고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김 할머니는 건물 한 채를 마련했다. 건물 임대만으로도 가족이 먹고살기엔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들이 '이제는 좀 여유를 부려도 되지 않느냐'고 해도 김 할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김 할머니는 평생 속옷까지 기워 입을 만큼 검소했다. 주변 사람들은 "장 한번 보러 가는 것도 깐깐하게 챙길 정도로 평생 '또순이'처럼 살았다"고 전했다.

"우리 식구들 먹고살 걱정은 이제 없습니다. 그저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줘서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어 주세요."

60여 년 동안 악착같이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데 주저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세대는 김 할머니의 사후 장례를 주관하고, 할머니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 계획이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은 귀가 어두운 김 할머니를 위해 최근 보청기를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