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계속 되는 경제 불안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독일 슈피겔 등 외신은 "국교(國敎)인 그리스 정교가 자살을 허용하지 않아 유럽 최저 자살률을 기록했던 그리스가 최근 계속 되는 자살로 경제 위기에 이은 또 다른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다"며 "지난 6월 한 달간에만 350여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그 중 5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자살을 고려한다'는 사람의 경우 2010년 2500여명에서 2011년엔 5500여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일 뿐 실제로는 더 높을 것으로 현지 전문가는 판단하고 있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암운이 드리워졌다는 해석이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결국 목숨을 잃은 이들 중 상당수는 중산층으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4월 아테네 시내 한복판에서 권총 자살한 드미트리스 크리스토울라스. 77세의 약사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는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연금이 줄자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우리는 돈을 낼 수 없다(We Won't Pay)' 운동을 하는 정치 집단의 일원으로 그리스의 국가 부채가 시민의 잘못 때문이 아닌, 국가의 잘못된 재정 운용임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온 사람이다. 그의 주머니에는 "35년 동안 연금을 내왔지만, 정부는 이제 와 연금으로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휴지통의 음식물을 찾아 나서기 전에 위엄 있는 최후를 맞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적힌 유서가 있었다. 그의 딸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라며 "정부에 맞서 존엄한 최후를 맞서기 위해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자살 이후 그리스는 들끓었다. 그리스 정부의 긴축 재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현지 신문 타 네아는 "내일이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그리스 사람들을 모두 신경 쇠약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며 "디미트리스의 행동을 반복하려는 움직임이 매일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젠 나이대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16일 49세의 사업가가 목매 숨졌고, 25일 79세 노인 역시 올리브 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 8월 3일엔 31세 남성이 권총자살을 했고, 이틀 뒤엔 15세 소년이 목숨을 끊었다. 그다음 날엔 전직 축구선수였던 60세 남성이 자살했다.
2007년도만 해도 자살률 2%를 기록했던 그리스는 2011년 구제금융의 직격탄을 맞고는 자살률이 19%나 급증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율이 가파르게 치솟아 지난해 상반기 자살률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40%나 증가했다.
그리스 정부는 몇 주 전 대폭의 예산 삭감 속에서도 자살 방지를 위한 '핫라인'을 설치했지만, 자살을 확인시켜주는 도구로 변모하고 있다. 아테네 경찰은 쉴새 없이 울려대는 긴급 전화에 비상이 걸렸다. 슈피겔은 "정부의 노력에도 많은 서민이 계속 목숨을 끊고 있다"며 "'사고 발생'을 뜻하는 빨간색 테이프가 온 도시를 감싸고 있다"고 전했다.
입력 2012.08.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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