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경북 울진군에서 만난 장모군. 덩치가 작고 말라 초등학교 3~4학년인 줄 알았는데, 장군은 “6학년이에요”라고 했다. 키는 144㎝, 몸무게는 38㎏. 또래보다 10㎝나 작다.

장군은 아빠(40), 형(16·고2)과 함께 산다. 엄마는 장군이 두 살 때 집을 떠났다. 배를 타던 아빠는 그물 감는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한 뒤 소주를 입에 달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최근에는 교통사고까지 당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치료비를 못 내 강제 퇴원당했다. 세 식구 생활비는 형이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다.

굶는 아이들

장군은 온종일 쌀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는다. 2년 전만 해도 친할머니(77)가 함께 살며 밥을 챙겨줬다. 그러나 할머니가 재혼을 한 뒤엔 가끔 반찬거리만 가져다준다. 아빠가 술에서 깨어나 밥을 직접 짓는 일은 일주일에 2~3번 정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31일 오후 장모양이 고무 대야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할머니와 지체장애 2급인 삼촌과 함께 사는 장양은 또래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키워야 할 나이에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방학인 요즘, 장군은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냉장고를 열어본다. 할머니가 해준 반찬이나 국이 있는 날엔 국에 밥을 말아 먹지만, 그마저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물 한 모금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형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달리는 것이 그의 유일한 놀이다. 점심과 저녁은 피자집에서 남는 피자로 때운다.

장군은 피자마저 당분간은 못 먹게 됐다. 지난달 29일 형이 오토바이 사고가 나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형제가 똑같이 왜소한 걸 보면 너무 안됐다"며 "어려운 애들일수록 잘 못 챙겨 먹고 건강하지 못하니까 커서도 돈벌이를 못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농촌 아이들 중에서 끼니를 거르거나 영양이 부실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할아버지·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들이 할아버지·할머니가 아프면 밥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이 없는 방학엔 그냥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도 많다.

지난달 31일 낮 12시 충남 홍성군의 한 농촌 마을. 장모(4)양네 가족이 평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 김씨(68)가 호박을 넣고 끓인 국물을 양은 냄비에 담아 내자 장양은 밥 한 공기를 전부 말았다. 자기 얼굴보다 더 큰 냄비에 얼굴을 박고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고추장이 반찬이었다. 몇 술 뜨더니 장양은 고추장을 아예 국에 풀어 빨간 국물을 만들고는 한 그릇을 전부 비웠다. 장양은 할머니와 지체장애 2급인 삼촌과 함께 산다. 아빠와 엄마는 장양이 어릴 때 집을 나갔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과 삼촌 앞으로 나오는 장애인 연금, 김씨가 텃밭에 고추 농사를 지어서 번 돈 등 57만원으로 먹고산다. 김씨는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수술비 40만원이 아까워 땀만 나면 빨개지는 눈을 비비며 버티고 있다. 장양은 할머니 손을 잡고 26㎞ 떨어진 읍내의 공립 어린이집을 다녔다. 하지만 요즘엔 할머니가 농사일로 바빠 온종일 집에서 흙장난을 하고 논다. 삼촌은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모두 사립인 데다 거기도 대기 인원이 많아 포기했다"고 했다. 집 근처 어린이집도 모두 10~15㎞ 거리다. ◇정부지원도 제대로 못 받아 충남 홍성 읍내에 사는 김모(10· 초 4)양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다. 김양은 10㎡(약 3평)짜리 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도 서울로 가더니 연락이 끊겼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한 달에 보름 정도 나무 패는 일을 해 월 60만원씩 벌었지만 두 달 전 무릎을 다쳐 누운 뒤로 수입이 전혀 없다. 당장 할아버지 수술비 300만원이 걱정이라고 했다. 할머니도 4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김양 끼니 챙기기도 벅차다. 김양네는 지역 사회복지법인에서 주는 쌀과 반찬으로 겨우 먹고 산다. 정부 지원금으로 한 달에 3번 먹는 8900원짜리 피자가 김양의 유일한 외식이다. 할머니는 "손녀딸 건강도 건강이지만 사춘기가 다가오는데 (성격이) 삐뚤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조손가정의 경우 군청에서 매달 3만원씩 식비로 쓸 수 있는 카드를 작년부터 발급해 주고 있지만 외진 곳에 사는 아이들은 카드 가맹점을 찾으러 읍내까지 나오기도 어렵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져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아이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필리핀 주부 A(47)씨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읍내에 나와 반찬거리를 사간다"고 했다. 홍성에서 18년째 조손가정 아이들을 돕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청로회 이철이(56)씨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라서 선생님한테도 배고프다는 말을 잘 안 한다"며 "지역이 넓은 농촌에선 어른들이 이런 아이들을 찾아내서 돕는 '공격적인 복지'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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