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댄 애리얼리 지음|이경식 옮김|청림출판|344쪽|1만6000원
워싱턴DC 케네디예술센터는 수준 높은 공연과 관객들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매출액 40만달러가 넘는 이곳 선물매장에 도난사고가 끊이지 않은 것. 해마다 15만달러 상당의 현금과 물품이 비었다. 어느 날 신임 매니저가 작심하고 '덫'을 놓아 한 명을 잡아냈다. 그런데도 결손액은 줄지 않았다. 이번엔 물품마다 가격표를 붙이고 판매대장을 기록하게 했다. 놀랍게도 비는 돈이 말끔히 사라졌다. 알고 보니 판매대에서 일하는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공범'이었다. 대부분 연극과 음악을 사랑하는 점잖은 은퇴자들이지만 이들이 무심코 하나 둘 '슬쩍'한 결과가 엄청난 '구멍'을 낸 것.
남 얘기가 아니다. 공금횡령은 비난하면서 회사 물품은 쉽게 갖다 쓰는 사람, 아이의 거짓말은 나무라면서 사고보험금은 실제 피해보다 높게 청구하는 사람, 수임료나 치료비에 불필요한 비용을 얹는 사람…. 많은 이들이 '사소한' 부정의 파도 속에 헤엄치며 살아간다. 저자는 우리 안의 부정직이 일상 속에서 어떤 식으로 꿈틀대는지, 그 '이무기'를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정직과 부정직 사이 줄타기
대학생들에게 모의시험 실험을 했다. A그룹은 흔히 하듯 감독관을 뒀고, B그룹은 문제를 풀고 스스로 채점한 후 답안은 파쇄기에 넣도록 했다. 마음만 먹으면 속일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 것. B그룹의 정답률이 A그룹보다 평균 두 문제 많았다. 이번엔 문항당 25센트부터 10달러까지 보상금을 주면서 실험해 봤다. 결과는 비슷했다. B그룹의 정답 수는 늘 평균 두 문제 더 많았다. 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늘 일정 정도의 부정을 저지른다. 반복된 실험의 결론이었다.
우리 내면엔 늘 두 동기가 싸운다. 남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회적 욕구와 속여서라도 이득을 얻으려는 이기적 욕심. 이 둘 사이에서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은 균형을 잡느라 애쓴다. 자신의 도덕적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부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준선은 무엇인지 파악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일종의 '모럴 다이어트'다. 점심·저녁에 적게 먹었으니 간식은 잘 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의 부정과는 타협한다.
자기만의 도덕률을 고수한다지만 이익 앞에서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미술감정가들은 무의식중에 자기 후원사 작품에 끌린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을 때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이성이 다른 과제에 몰두하는 사이 충동이 활개친다. '자아 고갈(ego depletion)' 현상이다. 피곤할 때 불량식품이 당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직성에도 문턱이 있다. 한 번 타협하면 미끄러지기 쉽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심리가 막다른 곳까지 내몬다.
◇돈보다 물건에 손이 쉽게 가는 이유
부정행위에는 심리적 거리도 한몫한다. 자신과 부정행위 사이에 단계가 많을수록 타협이 쉬워진다. MIT 기숙사에서 실험을 해봤다. 냉장고에 절반은 콜라 6개들이 팩을, 다른 절반은 현금을 접시에 담아두었다. 콜라는 72시간 안에 모두 없어진 반면, 지폐는 그대로였다. 복도에는 콜라 자판기가 있었다. 콜라가 목적이라면 지폐로 빼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돈은 꺼리고 만만한 콜라만 쉽게 집어갔다.
골프장에서도 비슷하다. 심판이 없는 골프 경기에서 선수들은 공을 좋은 위치로 슬쩍 옮기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 어떤 방법을 택할지 물어봤다. '클럽으로 밀어'는 23%, '발로 차서'는 14%, '손으로 집어서'는 10%였다.
오늘날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융 비리가 쉽게 일어나는 것도 실물과의 연관성이 멀어져 양심에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정의 대상이 심리적으로 멀고 추상적이며, 규정이 모호할수록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부정행위도 전염병처럼 퍼진다
우리는 각자 부정행위의 허용치를 두고 살지만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본다. 주변의 도덕성이 흐리면 자신도 느슨해진다. 자신의 의심스러운 행동에는 남도 동참시켜 자신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래서 부도덕은 전염성이다. 수업 시간에 노트북으로 '딴 짓' 하는 학생을 놔두면 갈수록 그런 학생들이 많아진다. 유리창이 몇 군데 깨진 건물을 방치해 두면 남은 유리창도 깨지기 십상이다.
집단이 개인의 도덕성을 무디게도 한다. 집단에 속한 개인일수록 다수를 위한다며 더 큰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 이른바 '이타적 부정행위'다. 이럴 때는 자신을 의적 로빈후드라 여기고 쉽게 부도덕과 타협한다.
◇장황한 설교보다 사소한 감시 장치가 낫다
로마제국에는 '메멘토 모리' 관행이 있었다. '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개선장군이 거리 행진을 할 때 노예 한 명이 이 말을 반복해서 귓가에 속삭였다.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그 비슷한 도덕적 각성 기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MIT와 예일대에 '명예수칙' 준수 서명을 시켰더니 부정행위가 없었다. 무신론자도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게 하면 거짓말 확률이 떨어진다. 심지어 무인판매대 앞에 사람 눈 이미지 사진만 둬도 결손액이 줄었다. 유혹의 순간에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정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참회나 기도, 고해성사 같은 종교적 장치들이 사회의 부패를 막는 기능을 해왔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유혹의 순간에 개입하는 작은 각성 장치 하나가 장황하고 거창한 설교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상식 밖의 경제학' '경제 심리학' 등의 저서로 경제 생활 속의 '비이성'을 헤쳐보였던 저자의 최신작. 이번엔 경제 분야를 넘어 일상 속의 도덕적 가식과 허세를 들춰냈다. 무겁고 심각할 수도 있을 주제를 고치 삼아 경쾌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