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의 고장'으로만 알려졌던 전남 화순군이 최근 '기분 좋은 사고'를 쳤다. 사상 최초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표준점수 성적 상위 30위(시·군·구 단위)에 진입한 것〈2012년 6월 28일자 F1면 참조〉. 비결을 듣기 위해 전화로 만난 정행중 전남도교육청 학교정책과 진로진학지원센터 장학사는 군의 성적 향상을 이끈 주역으로 능주고와 화순고를 꼽았다. 화순군 관내 4개 고교 중 일반계 고교(이하 '일반고')는 이 둘뿐이다. 지난 12일 각 학교의 '대표 선수' 자격으로 마주 앉은 장지혜양·육지수군(이상 능주고 2년)·김조은(화순고 3년)양·문서림(화순고 2년)군은 경쟁하듯 학교 자랑을 쏟아냈다.
비결1 | 능주고 '정시적합형'·화순고 '수시적합형'
"능주고는 말하자면 '수학 특수목적고'예요. 10년 이상 능주고에서 입시 지도를 해 온 선생님들의 성공 노하우가 '수학'이거든요. 저 역시 '베테랑 수학 선생님'의 도움 덕에 지난해 3등급 대였던 모의고사 수리영역 등급을 1년 만에 1등급으로 올렸어요."(장지혜)
"화순고는 입학사정관·성적우수자 전형 같은 수시모집에 강해요. 실제로 본인 성적에 비해 좋은 학교로 들어간 선배가 많죠. 그래선지 학교 측에서도 내신 관리나 비교과 활동에 관심이 많아요. 이를테면 교내 역사 동아리 '길 따라 숨결 따라'의 경우, 주5일 수업제를 적극 활용해 휴일마다 다른 지방으로 탐방·답사에 나선답니다."(김조은)
각 학교의 특색과 장점을 묻자 넷은 "능주고는 '정시적합형', 화순고는 '수시적합형' 학교"라고 입을 모았다. 능주고는 비평준 사립학교로 전남도 전체에서 신입생을 모집한다. 이 때문에 내신성적 유지하기가 화순고보다 힘든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 김조은양이 "농어촌특구 지역 학생은 서울권 학생보다 내신이 훨씬 좋아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자 장양은 "수능 최저등급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며 받아치기도 했다.
비결2 | 둘 다 기숙 학교… 자습 시간 길어
두 학교는 모두 자습 시간이 긴 편이었다. 능주고와 화순고 모두 학내 기숙사가 있다. 기숙사 수용 인원 비율은 능주고가 93%, 화순고가 23% 선이다. 육군은 "기숙사 독서실에서 새벽 1시 넘어서까지 공부하고 모르는 건 선배한테 물어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사교육 의존율은 자연스레 낮아졌다. 김양과 육군은 각각 학교 친구와 선배의 도움으로, 문군은 학교 심화수업으로 취약 영역 성적을 올렸다. (실제로 화순군엔 고교생 대상 대형 학원이 없다.) 넷은 이번 평가원 발표에서 농어촌 지역의 활약이 두드러진 데 대해 "농어촌 학교에 다니는 우리로선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보완할 점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일단 문군을 제외한 셋은 모두 모의고사 외국어 영역이 2·3등급대로 취약했다. 김양은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서울에 비해 영어교육 열풍이 덜한 탓"이라고 말했다. "듣기평가는 아무래도 조기 학습이 큰 영향을 끼치다 보니 뒤늦게 대비하는 게 쉽지 않아요." 문군은 "대입 농어촌 지역 특례 조건을 좀더 엄격하게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별로 다르지만 농어촌 특구 지역에서 3년 정도 살면 누구나 농어촌특별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어요. 이 점을 노리고 고등학교만 농어촌 지역에서 다니는 '얌체족'이 꽤 있습니다. 토박이인 저와 제 친구들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죠. 이를테면 농어촌 거주 기준을 학생과 부모 모두 6년 이상 정도로 늘린다면 시골 학교의 경쟁력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성적 우수 지역' 비결, 지역청·학부모에게 들어보니
①정행중 전남도교육청 학교정책과 진로진학지원센터 장학사ㅣ"도교육청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일명 '아이에듀업' 사업 덕도 있는 것 같다. 공모를 통해 각 학교에 필요한 물품 등을 제공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화순고의 경우, 지난 2002년 농어촌중심고교로 지정된 이후 외부에서 꽤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2년 전 증축한 이 학교 기숙사 역시 도에서 건립 비용을 전액 제공했다."
②이정임(49) 능주고 3학년 학부모 대표ㅣ"화순군은 중학생 수에 비해 일반고 정원이 턱없이 모자란 데다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타 지역 학생의 유입이 많다. 화순 관내 고교에 진학하려면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능주고의 경우, 이중근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을 비롯한 교직원의 열의가 대단하다. 아이들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오후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을 정도다."
③주혜경(46) 화순고 1학년 학부모 대표ㅣ"광주와 차로 20분밖에 안 떨어져 있어 일부 학부모는 광주와 경쟁의식같은 게 있다. 서울 강남과 가까운 분당(경기 성남시)의 학구열이 높은 것과 비슷하다. 학부모회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반별로 평균 두세 명의 학부형이 열심히 활동한다. 학부모회는 특히 학교 측에 학생들의 성적 향상 관련 사항을 자주 건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