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팝스타가 뭐 저래? 지난해 슈퍼볼(프로풋볼 결승전) 경기가 시작되기 전 무대에 선 가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미국 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Star-Spangled Banner)'을 불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중간에 가사를 깜빡해 뒤죽박죽이 됐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와 체면을 구겼다.

올해 아메리칸 풋볼 챔피언십(AFC) 결승전에선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하드록의 제왕'이라는 스티븐 타일러가 고음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구름관중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가장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가수는 휘트니 휴스턴. 1991년 슈퍼볼에서 국가를 소울풍으로 바꿔 불렀다. 나중에 싱글로 발매돼 빌보드 핫100에서 20위까지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강호동의 '스타킹'이 발굴한 필리핀의 소녀가수 샤리스 펨핀코는 국가를 완벽하게 불러 일약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다. 2년 전 LA다저스 구장에서다. 작은 몸집에서 폭죽 터지듯 뿜어져 나오는 볼륨에 관중들은 마치 감전이나 된 듯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로 미국 국가는 가사도 외우기 힘들고 더욱이 음정의 높낮이가 1.5 옥타브나 돼 소프라노 가수 말고는 부르기가 어렵다. 1절이나마 가사를 정확히 알고있는 미국인은 셋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나와있을 정도다.

미국 국가는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에야 제대로 부를 수 있다는 조크도 전해진다. 19세기 초 영국의 사교클럽에서 유행했던 곡조여서 이런 우스개가 나왔다. 당시 술꾼들의 18번은 '천국의 아나크레온을 위해서'. 고대 그리스의 궁정시인 아나크레온은 사랑과 술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지어 애주가들에겐 아이콘이었던 모양이다.

이 곡조에 아마추어 시인(프란시스 스캇 키)이 가사를 얹어 미국 국가가 완성된 것이다. 1812년 전쟁에서 영국군이 밤새도록 함포공격을 해댔지만 새벽녘 성조기가 꿋꿋하게 휘날리는 것을 보고는 감격해 가사를 썼다. 그래서 미국 국가는 로켓이 터지고 섬광이 밤하늘을 뒤덮어 사실 군가에 더 가깝다.

이에 비해 우리의 애국가는 따라 부르기가 쉬울 뿐더러 유명 작곡가가 지어 미국 국가와는 대조적이다. 요즘 어느 '종북' 의원이 애국가를 부정해 파문이 일고 있지만 사실 애국가는 내용도 평화적이어서 친근감이 넘친다.

미국이 국가를 공식지정한 것은 불과 80년 전이다. 유명 만화가 로버트 리플리가 "믿거나 말거나 미국엔 국가가 없다"는 발언에 자극을 받은 의회가 결의문을 채택해 그제서야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1960년대 들어서 미국의 국가는 수모를 당한다. 기념비적인 사건은 '기타의 전설'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가 꼽힌다. 우드스탁 축제 마지막 날 헨드릭스는 베트남전의 참상을 파열음과 갖가지 소음 그리고 사이키델릭의 굉음으로 표출해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데도 50만이 넘는 젊은이들은 자리를 뜨지않고 그와 호흡을 같이 했다.

외우기도 힘들고 부르기도 어렵고 더구나 가사도 도발적이고… 국가를 바꾸자는 캠페인이 일어날 법 한데도 조용하다. 아마 맨 끝 부분에 나오는 '자유인의 땅에 나부끼는 성조기…' 구절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음이어서 가장 부르기 어려운 대목이다. 좌우의 이념이나 피부색깔의 차이에도 불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가 바로 '자유'다.

통합진보당의 새 지도부 출범식에서 태극기가 등장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등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것이 화제가 된 것도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지난 2000년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12년 만에 처음 보는 것이어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아마 몇십년만에 처음 불러보는 애국가여서 기억을 되살려 외우는데도 힘이 좀 들었을 법 하다.

50년 전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한 당시 미국의 반체제 인사들은 정권의 야만성을 한껏 조롱했지만 그래도 국가를 부정하는 행위는 일체 없었다. 진보당이 애국가를 불렀다는 것에 칭찬은커녕 분노가 더욱 치솟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