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원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어떤 제도가 만들어질 때 공익이나 대의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그 뒤엔 사익(私益)이 도사린 경우가 많다. 일부 시·군·구를 통합하는 지방행정 개편 역시 행정 효율성이라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실제론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방자치제도의 출발부터 그랬다. 1990년대 초 도입된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세력 간 경쟁의 산물이었다. 야당은 지방자치제로 중앙정부가 임명했던 단체장을 자기들의 공천을 받은 인사로 교체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 때문에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지방자치를 앞당기는 동시에 범위도 광역은 물론 기초자치단체까지 최대한 확대하려고 했다. 반면 여당인 민정당은 야당과 정반대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행정체제 개편에선 여야가 같은 입장을 보인다. 자치단체를 통폐합하고, 단체장을 직선제에서 임명제로 전환하자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런 개편이 행정 능률을 높인다고 강조한다. 자치단체를 통합해 행정기구·공공시설·행사 등을 통합 운영하면 행정 비용을 줄이고 공공 서비스 생산에 드는 단위 원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편의 실제 동기는 행정 능률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행정 개편을 촉진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2010년 제정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은 통합의 반대 세력이 될 수 있는 주민·공무원·지방의원·자치단체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통합 이후 이들에게 재정적·경제적·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하지 않을 것을 명문화했다. 자치단체를 통합하면 불필요한 인력이나 기구를 감축하는 게 필수인데 이런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보장해준 셈이다.

결국 지방행정 개편엔 국회의원들의 사적 이익이 깔려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재선(再選)이다. 대개 퇴임 후 국회의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치단체장은 국회의원 재선을 위협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자기의 정적(政敵)을 자치단체 통합과 임명제 전환으로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국회가 제정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는 얼마 전 전국 16개 지역의 36개 시·군·구를 통합하고, 대구·광주 등 5개 광역시의 자치구 구청장을 임명제로 전환하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번 개편안의 이면(裏面)에 자리잡은 정치적 동기는 객관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국회에 제출된 지방행정 개편 법률안은 8개인데, 모두 국회의원이 발의했다. 이런 사실은 자치단체 통합과 단체장 임명제 전환에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방행정 개편의 진정한 목적이 행정 효율성 향상이라면 자치단체 통합만 고수하지 말고 지방교부세의 공동세(共同稅)화 등 집행이 쉽고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치단체 통합은 자치단체의 행정 능률성 향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본격적 지방자치 실시를 앞두고 대대적인 시·군 통합을 통해 1995년에 탄생한 30개 통합시를 대상으로 통합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통합 이후 자치단체의 행정 비용이 의미 있게 줄어든 것도 아니고 자치단체의 경제가 과거와 비교해서 성장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자치단체 통합 계획이 실행되더라도 자치단체의 행정 능률성이 의미 있게 향상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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