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 오지 않아도 입사할 수 있나요?” “어떤 능력이 가장 중요한가요?” 외교통상부 주최로 지난 5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개최된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에서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이다. 국제기구 근무를 목표로 하는 청소년은 날로 늘고 있지만 정작 무슨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중고생이 적지않다. ‘토종’ 출신으로 국제기구 입성에 성공한 3인을 직접, 또는 이메일로 만나 ‘국제기구 진출에 유용한 팁(tip)’을 전수 받았다.
_이선경|ASEF 프로젝트 매니저(싱가포르 근무)〈아시아-유럽재단〉
"나만의 개성에 맞는 기관 선택하길"
이선경(34)씨는 '섬 소녀'였다. 경남 거제도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아주대 인문학부(영어영문학 전공)에 입학하며 섬 밖 세상으로 나왔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문화 교류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2009년부터 그가 근무하고 있는 ASEF는 학술·문화·인적 교류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간 이해 증진을 돕는 싱가포르 소재 비영리기관이다. 이씨는 이곳에서 유라시아 공중보건에 관한 대내외적 인식을 높이고 장래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프로그램 전반의 기획을 맡고 있다. "면접 때 단체 성격을 고려해 두 대륙 문화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는 점을 피력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 ASEF 입사 전인 2007년부터 2년간 매년 3월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기독교 축일의 하나) 축제에서 자원활동에 참여했어요. 평일·주말 할 것 없이 열정적으로 봉사에 참가했던 경험 등을 인터뷰 때 강조했죠."
그는 "자신에게 맞는 국제기구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유엔(UN)본부·산하기관 외에도 국제기구로 통칭할 만한 기관은 무척 많습니다. 그 중 자신의 개성을 고려해 몇몇 특정 조직을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전술'이 필요해요. 이메일 소식지를 신청, 최신 정보를 챙기거나 해당 기구 주최 행사에 참여해 인맥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ASEF 역시 이런 경로를 통해 상당수 인력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엔본부·산하기관의 공석(vacancy information) 정보는 외교통상부 국제기구 인사센터 홈페이지(unrecruit.mof at.go.kr/unrecruit)에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으니 참고하라"고 덧붙였다.
_임형준|WFP 한국사무소장(서울 근무)〈유엔세계식량계획〉
"어학 능력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경험"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기아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구호 활동을 펼치는 유엔 산하기구다. 기아 현장이 보고되면 논의를 거쳐 24시간 안에 요원이 파견되는 '현장 중심 업무'가 이곳의 특징. 지난해부터 한국사무소에 파견돼 구호기금 마련 임무를 맡고 있는 임형준(41) 한국사무소장은 대학(한국외국어대)에서 루마니아어과를 전공한 후 모 국내 대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국제기구 입사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후 한국외대 국제대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유엔 뉴욕본부 인턴, JPO(2001년·5기) 등을 거쳐 2004년 WFP에 입사했다.
임씨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에게 부족한 건 '어학 능력'이 아닌 '다양한 경험'이다. "대학 1학년 때 배낭 하나 메고 3년 반 동안 80개국을 혼자 여행했던 게 WFP 입사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지구촌의 다채로운 문화를 온몸으로 부딪친 경험을 '저만의 경쟁력'으로 내세울 수 있었어요.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려면 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그는 '사명감'도 강조했다. "구호 현장엔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이 비일비재합니다. 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서 일할 땐 현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가슴 졸이기도 했죠. 온두라스에서 거친 길을 달리다 자동차가 60m 절벽 아래로 구른 적도 있고요. 사명감 없으면 이런 어려움을 견디기 어렵다는 걸 면접관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방글라데시를 여행하던 중 굶주림에 죽어가는 할아버지와 마주했고 밥값이 부족해 말라위에서 2박 3일 이상 굶기도 했어요. 당시 경험이 제 WFP에서 일할 수 있는 제 사명감의 뿌리가 됐죠. 봉사에 대한 진심을 남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라면 면접관도 거뜬히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_박재윤|UNEP 아시아태평양지부 담수생태계(Freshwater Ecosystem) 분야 JPO(태국 방콕 근무)
"공부 시간 쪼개어 틈틈이 대외 활동"
박재윤(30)씨는 경기과학고와 카이스트(KAIST)를 각각 졸업한 전형적 '공학도'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 에꼴데민(Ecole des Mines)에서 환경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전문성'을 십분 살려 세계 각국의 환경 관련 업무를 돕는 UNEP에서 'JPO'〈키워드 참조〉로 일하고 있다. 박씨 역시 "유창한 영어 실력이 국제기구 근무의 절대 조건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전 유려한 영어를 구사하지도, 영어권학교에서 공부해본 적도 없어요. 다만 일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자신의 전문적 식견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어학 능력은 갖춰야겠죠."
그에 따르면 UNEP는 구성원의 '전문성'뿐 아니라 '리더십'과 '봉사정신'을 중시한다.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약자를 보듬을 수 있는 능력은 필수입니다. 전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 '블레즈 파스칼' 수혜자 모임인 '파스칼 장학생회' 회장과 한국정보화진흥원 주관 '해외 인터넷 청년봉사단' 팀장을 각각 맡았던 게 큰 도움이 됐죠. 중고생 후배들도 공부 외에 관련 대외 활동에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 JPO
‘국제기구 초급 전문가’로 ‘Junior Professional Officer’의 줄임말이다. 정부의 지원으로 매년 15명의 청년에게 2년간 국제기구에서 파견 기회를 주는 제도. 지난 1996년 신설됐다. 2011년 7월 현재 파견 기간이 종료된 63명 중 51명이 국제기구에 진출했다. 지원 자격은 TEPS 성적이 900점 이상인 만 30세 미만 남녀. 시험 과목은 (영어)면접·영어필기 등이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외교통상부 국제기구 인사센터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