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 토끼, 고슴도치 등 '또 하나의 가족'을 기르는 가정이 급속히 늘고 있다. 더불어 '장난감 같다'는 뜻의 '애완동물' 대신 '서로 돕고 산다'는 뜻의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의 비율은 약 17.4%. 다섯 집 중 한 집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들은 언젠가 반려동물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사람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족같은, 혹은 가족보다 더 친밀한 반려동물이 떠난 자리에는 남은 자의 슬픔, '펫로스(Pet-Loss)'가 자리잡는다.

◇펫로스 증후군, 심각한 경우 많아

'펫로스'란 반려동물이 죽은 후 상실감으로 생긴 마음의 병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과 마주하면 비슷한 감정의 과정을 거친다. 반려동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동물 관련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보경 대표가 입양한 길고양이 '대장'이와 눈을 맞추고 있다.

국내 최초의 반려동물 장례업체 '페트나라'의 박영옥 대표는 13년째 다양한 펫로스 증후군을 목격해왔다. 그는 7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교수 한 분이 개를 화장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날 새벽, 전화가 왔어요. 정말 죽은 거 확인했느냐고, 혹시 살아있는데 화장한 거 아니냐고…." 박 대표는 거의 한 달간 똑같은 전화에 시달렸다. 3년 전 17년간 키운 '난이'를 떠나보낸 정수경(가명)씨는 지금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난이가 좋아하던 닭가슴살도 매주 사고 있다. 정씨는 "(닭가슴살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지난 2월에는 부산의 한 20대 여성이 키우던 개가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연세 YOO&KIM 신경정신과 유상우 원장은 진료실에서 펫로스 증후군을 심하게 앓는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50대 주부가 내원했습니다. 키우던 개가 죽고 나자 식욕을 잃어서 체중까지 감소한 상태였죠."

◇극복 위해서는 주위 도움 필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슬픔을 제대로, 충분히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여전히 '개 한 마리 죽은 걸 가지고 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리온 동물병원 김태호 노령견 클리닉 과장은 "주변인들이 슬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반려인이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빨리 극복할 수 있다"면서 "유별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려인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 유상우 원장은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라도 슬픔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물 장묘업체 '페트나라'의 추모관에 놓인 반려견들의 사진.

아이가 있는 가정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아이는 동물과 사람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크게 슬퍼한다. 서울 우리아이 마음 클리닉의 유한익 원장은 "아이가 슬퍼할 때 무시하거나 질책하면 이별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랑과 돌봄을 주었는데 상처만 되돌아온다고 생각해서, 배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수의사 리처드 H.피케른 박사는 저서 '개·고양이 자연주의 육아백과'를 통해 반려동물이 죽고 난 뒤에 서둘러 새 동물을 사주는 것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생명이란 참 싸구려구나. 관계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있고 교환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 관련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는 "우리가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함께했던 삶이 좋았고, 다정했고, 즐거웠기 때문"이라며 "그러니 자책하기보다 충분히 애도하고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보내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펫로스 극복에 도움될 만한 책

△우리, 헤어질 줄 몰랐지(이근영 글·사진, 북하우스)
―포토그래퍼인 저자가 촬영한 반려동물의 아름다운 사진과 글이 위로가 되어준다.

△고마워, 너를 보내줄게(존 카츠 글, 미래의 창)
―반려견을 안락사시킨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펫로스의 아픔을 위로하는 법을 알려준다.

△펫로스―반려동물의 죽음(리타 레이놀즈 글, 책공장더불어)
―동물 호스피스 활동가인 저자의 경험과 조언이 담겨있다.

△열아홉살 찡이, 먼저 나이 들어버린 내 동생(김보경 글, 리더스 북)
―동물 저서 출판인인 저자가 19년간 함께 살아온 반려견과의 이별 과정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