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함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17년 만에 좌파 정권이 등장하고, 사회적 저항을 무릅쓰고 고강도 긴축정책을 추진해 온 그리스 연립정부가 총선에서 패배함에 따라, 유럽발(發) 정치 리스크가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정치 지형의 변화로 유럽 각국의 긴축 정책 기조가 흔들리면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질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6일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한 프랑수아 올랑드(58) 사회당 후보가 제시한 변화의 방향은 재정 투입을 통한 경제 성장, 부자·대기업에 대한 증세, 외교 무대에서의 발언권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이 중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올랑드의 경제정책이다. 올랑드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가진 연설에서 "긴축만이 유일한 선택이 아니다"라고 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주도해 온 긴축재정 정책의 수정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6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프랑수아 올랑드(오른쪽) 대통령 당선자가 동거녀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왼쪽)와 함께 자신의 지역구인 프랑스 남부 튈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올랑드는 1995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17년 만에 당선된 좌파 대통령이다.

올랑드는 청년 일자리 15만개 창출, 교사 6만명 추가 채용 등 돈을 풀어 고실업·저성장에 시달리는 프랑스 경제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생각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13년 만에 최악인 실업률 10%, 경제성장률 1.6%라는 경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올해 초 국가신용등급이 트리플A(AAA)에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올랑드는 경제 성장에 투입할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더 걷을 계획이다. 그는 이미 "우리의 진정한 적은 금융권과 탐욕스러운 부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연 100만유로(약 15억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해 75%의 소득세율을 부과할 계획이다. 현재 소득세 최고 세율은 41%다. 그는 또 은행 법인세를 대폭 올리고 금융 거래세를 도입하는 한편, 대기업 법인세 감면 혜택도 줄이기로 했다.

이런 정책은 '노동의 유연성 강화와 감세를 통한 기업 활성화'로 요약되는 사르코지 경제정책의 근본적 수정을 의미한다. 효율성 강화보다는 사회 양극화 해소에 더 방점을 찍겠다는 뜻이다.

여론조사에서 계속 사르코지를 앞선 올랑드의 승리를 미리 예상한 일부 고소득층과 기업들은 벌써 탈(脫)프랑스 행렬에 동참했다. 국제적 식품성분 분석기관 유로핀스 사이언티픽이 과도한 세금을 피해 룩셈부르크로 본사를 옮겼고, 영국 부동산 시장에도 프랑스 부자들이 몰려가고 있다.

올랑드의 당선은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유럽 경제 전반에도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올랑드가 유럽연합(EU) 25개국이 합의한 신재정협약의 개정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올랑드는 다음 달 말 브뤼셀에서 열릴 예정인 EU 정상회담에서 재정 투입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의 도입을 요구할 계획이다. EU는 이에 대비해 새로운 경제정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정책도 궤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올랑드는 나토의 계획보다 2년 빨리 아프가니스탄에서 프랑스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올랑드가 이런 정책들을 예정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사르코지와의 격차는 최소 5%포인트 이상 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3.3%포인트에 불과했다. 내달 10일 예정된 총선에서의 승리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올랑드가 중도 성향 유권자를 붙잡기 위해 온건한 이미지의 총리를 선택하고, 정책 추진에도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간 르 파리지앵은 "올랑드는 곧 천국이 아닌 현실이라는 지옥을 만날 것"이라며 그의 앞날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