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40승을 올린 필 미켈슨(42·미국)에게 2003년 3월 23일은 '다시 태어난 날'이다.

그날 병원 분만실에서 부인 에이미는 자궁 동맥 파열로 생사를 넘나들었고 아들 에반은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후 7분간 숨을 쉬지 못했다. 의료진에 이끌려 병원 복도로 나온 미켈슨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간절한 기도를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아난다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

거짓말처럼 부인과 아들은 회복됐다. 이후 미켈슨의 삶은 달라졌다. 9일 골프 명예의 전당 입회식을 치르는 미켈슨에 대해 골프닷컴은 "만약 '선행(善行)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그는 벌써 오래전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전했다.

2006년 벨사우스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아들 에반(왼쪽), 딸 소피아를 안고 기뻐하는 미켈슨의 모습.

미국 뉴저지에 사는 데이비드 핀(19)이 미켈슨을 처음 만난 것은 12세 소년이던 2005년 PGA챔피언십 대회장이었다. 팔다리가 오그라들고 말을 하지 못하는 희귀병을 앓는 핀은 휠체어를 타고 14번홀 그린 뒤에서 연습 라운드를 구경하고 있었다. 퍼트로 홀 아웃한 미켈슨이 핀에게 다가와 말했다. "안녕, 친구. 와줘서 고맙다." 그는 장갑을 벗어 사인한 뒤 핀의 무릎 위에 올려줬다.

그 순간부터 핀은 미켈슨의 '열혈 팬'이 됐다. 갤러리 틈바구니에서 휠체어를 타고 4라운드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켈슨은 핀을 불러 트로피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우정은 오늘까지 이어진다. 미켈슨과 함께한 추억을 모아둔 앨범이 핀의 '보물 1호'다. 핀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준 건 미켈슨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존슨빌 초등학교 교사인 미란디 스콰이어즈(45)씨는 2009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다. 매년 여름 미켈슨이 미국 전역의 수학·과학 교사 600명을 모아 일주일간 공부시키는 '교사 아카데미'에 선발된 것이다. 새로운 수업방식과 교재를 산더미처럼 제공하고 비행기 표와 호텔 스위트룸 숙박까지 책임졌다.

미켈슨의 지원으로 폐허 속에서 새집을 갖게 된 뉴올리언 스의 음악가들(사진 왼쪽). 희귀병을 앓아 거동이 불편하고 말도 할 수 없지만 미켈슨과 친구가 된 데이비드 핀(오른쪽).

학교로 돌아온 스콰이어즈씨는 교실 구석에서 직접 벌레를 키우고 수업에 아이패드를 도입하는 등 획기적인 방식을 시도해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사라 백슬리(9)양은 "원래 수학·과학을 싫어했는데 스콰이어즈 선생님을 만난 뒤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됐다"고 했다. 교사 경력 24년째인 스콰이어즈씨는 "사람들이 말로만 '어린이가 나라의 미래'라고 떠들 때 미켈슨은 어린이 교육에 실제로 투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공군 조종사였던 미켈슨은 군인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쏟는다. 상이군인들에게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맞춤형 주택'을 지어주는 비영리단체의 대변인 겸 재정 지원을 2004년부터 맡고 있다. 전사한 군인의 자녀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주는 재단도 후원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땐 미켈슨 부부가 직접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만나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50만달러를 기부해 집을 잃은 음악가들에게 새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다.

매년 8월 미켈슨은 고향인 샌디에이고 지역의 저소득층 아동 2000명을 버스로 실어날라 대형 상점으로 데려간다. 새 학년을 앞두고 필요한 학용품과 옷, 신발 등을 마음껏 고르게 하는 '스타트 스마트' 프로그램이다. 초등학교 3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 돈테 로케(32)씨는 "새 옷을 걸어놓고 학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