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실시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당내 경선(競選)에서 부정선거를 주도한 진보당 당권파가 지난 2일 진상조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비(非)당권파 측에 거래를 제안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3일 진보당 내부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말 당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활동이 한창일 무렵 당권파의 핵심으로 알려진 비례대표 2번 이석기<사진> 당선자는 국민참여당 출신 유시민 공동대표를 만나 수습방안을 논의했다. 이 당선자는 진보당 당권파의 주축인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알려진 사람이다.
한 핵심관계자는 "이 당선자가 유 대표에게 '6월에 있을 당 대표 선출 대회에서 당 대표로 밀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비례대표 당선자가 공당의 대표를 만나 당권 카드를 꺼내며 뒷거래를 제안했다는 것은, 이 사람이 당권파인 경기동부의 핵심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권파 측은 조사결과 발표 전날인 지난 1일에도 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 등에게 비례대표 1번 윤금순 당선자를 사퇴시키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진보당 관계자가 전했다. 윤 당선자는 민노당 출신이지만 '인천연합' 소속이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당권파의 도덕성은 또 한 번 치명타를 입게 될 전망이다. 부정선거를 감추기 위해 당직과 의원직 거래까지 제안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인 윤금순 당선자는 이와는 별도로 의원직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자가 회장으로 몸담았던 전국여성농민총연합회 역시 사퇴 의견을 모았고, 윤 당선자는 3일 국회에서 사퇴 회견을 가지려다가 일단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자가 사퇴하면, 나머지 2번 이석기 당선자와 청년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자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편 이정희·유시민·심상정 등 진보당 공동대표들은 4일 일제히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도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와,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으로 당선된 후보들의 사퇴 문제에 대해선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 당권파는 이정희 공동대표를 사퇴시키는 것까지는 받아들이면서도 2번 이석기 후보를 방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당권파의 움직임은 이 후보가 경기동부의 ‘성골’로 불리는 실세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가 ‘당권파의 수호대상 1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일 조준호 공동대표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 직후 당권파 측의 이의엽 4·11 총선 선대본부장이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도 이석기 당선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당선자는 경기동부연합의 주축이었던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82학번으로 1992년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씨가 북한을 추종해 만든 민족민주혁명당에서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3년 3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8·15 특사로 가석방됐다.
경기동부의 상징이 된 그는 출소 이후 경기동부가 만든 인터넷 매체인 ‘민중의소리’ 이사, 정치컨설팅 및 홍보·광고 기획을 하는 ‘씨앤피전략그룹’ 대표이사, 여론조사 업체인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 주로 민노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에서 일해 왔다. 민노당은 2007년 권영길 당시 대선후보의 대선캠프 홍보일을 이 당선자의 ‘씨앤피전략그룹’에 몰아줬다. 이후 이 당선자는 경기동부의 정책과 재정 부문에서 핵심이 됐다고 한다.
당 관계자들은 “이 당선자야말로 당권파의 두뇌이자 심장으로 당권파가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