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찌빠, 서울 손오공, 놀부전, 포졸 딸꾹이, 원시소년 똘비…. 만화가 신문수의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소년 조선일보'를 펼치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만화였다. 벌써 30년 전의 이야기다. 그 시절의 추억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만화로 보는 세상'전을 찾았다. 한때 만화는 놀이였고 만화방은 놀이문화의 거점이었다. 인터넷은커녕 텔레비전도 귀한 시절이었다. 빌린 만화책을 돌려보았고 연습장에는 주인공을 그린 그림이 가득했으며 만화를 잘 그리면 인기를 끌었다. 만화방을 중심으로 분식집과 문구점이 있었고, 구슬치기든 딱지치기든 만화방이 있는 골목에서 이루어졌다. 카카오톡은커녕 전화기도 귀한 시절이었다. 친구를 찾고 싶으면 만화방부터 찾았다. "병구 왔어요?"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좋아하는 만화나 만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됐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만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박수동의 '고인돌' 중 한 장면을 보자. 나무에 열려 있던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솟구친다. 깜짝 놀란 원시인이 다른 원시인에게 왜 그런지 묻는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한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 아직 나오기 전이거든." 놀라운 역설이다. 크게 웃을 수밖에 없다.

그리운 얼굴 '로봇 찌빠'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문수의 전시실이다. 로봇 찌빠가 금방이라도 종이를 뚫고 나와 소란스럽게 어울릴 것 같다. 찌빠가 우리들에게 주는 웃음은 여전하다. 과장된 동작에 희화화된 표정이 어우러져 마치 떠들썩한 축제처럼 흥겹다.

어릴 때부터 잘 그려야 한다고 배운 우리들에게 윤승운의 만화체는 특이하다. 서양이나 일본의 사실적인 극화체와 달리 머리는 몸보다 크고 꽉 다문 치아 밖으로 혀가 나와 '메롱' 한다. 화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림을 잘 그릴수록 어릴 때 그렸던 그림으론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고. 소믈리에, 바리스타, 스마트폰…, 낯선 단어들은 익숙해지고, 익숙하던 만화와 추억들은 낯설어졌다. 잊고 있었던 상상의 세계를 이정문의 '철인 캉타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위기에 빠진 '캉타우'가 어떻게 극복할지, 다음 호가 나올 때까지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기억들. 그레이트 마징가와 대결하던 '캉타우'의 초강력 철퇴. 엄청난 미사일 공격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냉각광선.

마지막 전시실에는 요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만화관이 있었다. 기술적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구현된 애니메이션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한때의' 만화가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풍기가 있으려면 선풍기 제조업자가 있어야 하듯이 현재의 만화들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고전에 바탕을 두어 새로운 예술사조가 나오는 것처럼 당시의 외로운 창작고통들이 단단한 뿌리가 되었을 것이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놀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만화는 어쩌면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인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서 만화는 불량식품의 차원을 넘어 사회, 문화적으로 확장되었다. '뽀로로'의 산업효과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단순한 텍스트의 차원을 넘어 문학과 영화에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중요한 컨텍스트(context)다. 인터넷의 수많은 만화동호회는 새로운 공동체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만화는 대중과 세대 간에 가장 손쉽게 소통하는 수단이다. 과거를 돌아볼 수 있고 함께 간 아이들에게 옛날을 들려주어 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

'만화로 보는 세상'전,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서 6월 17일까지, (02)425-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