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7세 소년이 쓴 책 한 권이 100만 권 넘게 팔리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나는 한국인이야'.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지은이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유학의 어려움과 여러 생각들을 솔직하게 적은 에세이였다. 유학을 가겠다며 가출 소동까지 벌였던 그때 그 말썽꾸러기가 꼭 20년 만에 다시 책을 펴냈다. '13-21'의 저자 신세용 국제아동돕기연합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나중에 하면 되지'는 핑계일 뿐
그의 나이 올해 37세.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또 극적인 인생을 살아왔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정치·경제·철학 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KAIST MBA에서 금융공학을 공부했다. 이후 금융회사를 설립해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29세의 어느 날 아동구호단체 '국제아동돕기연합'을 설립해 8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가 아동구호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그때는 막연하게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 정도였다. 그러나 옥스포드에서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상을 좀 더 밝고 바르게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 금융공학을 공부한 것도, 금융회사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었어요. 우선 자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중에 언젠가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에 아동구호단체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들리는 대로 따라하며 영어 익혀
어린 시절부터 그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13세 때 밀항 계획까지 세우면서 가출 소동을 벌일 정도였다. 결국 그는 중1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유학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어린 아들이 한국이 그리워 빨리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산골 오지의 중등사관학교에 입학시켰다. 거친 미국 아이들 틈에서 동양인은 그 혼자뿐이었다. 왕따, 인종차별, 폭행을 매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제가 선택해서 온 것이니 선택에 책임을 지고,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고 의지를 굳혔어요."
알파벳 순서도 모른 채 유학을 떠난 신 이사장의 성적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사관학교의 거친 학생들과 싸우면서 그는 자신만의 학습법을 만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절 놀리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그 말로 되받아치곤 했어요.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엄마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모국어를 익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던 것 같아요. 어학 학습법을 묻는다면, 들리는 대로 따라해 보기를 권합니다."
일반 과목을 학습할 때는 '시뮬레이션 공부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역사 공부를 할 때, 본인이 그 시대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고민하며 공부를 하는 방법이다. 역사 속에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상황을 살피게 되니까 그 당시의 상황과 사건들이 쉽게 머리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인생을 결정짓는 시간 '13-21'
신 이사장은 13세부터 21세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다. "저에게 13세부터 21세까지의 시간은 특별하고 의미가 컸어요. 하얀 도화지와도 같은 시기였죠. 하지만 이는 비단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때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나이인 동시에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어떻게든 흔들릴 수 있는 시기이니까요."
그가 20년 만에 펴낸 책의 제목이 '13-21'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년 전 '나는 한국인이야'에는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히 풀어냈다.
"삶이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당장은 설명하기 힘든 선과 색을 칠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중에 그림이 완성돼 멀리서 바라보면 비로소 그 선과 색이 그곳에 없으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죠. 지금은 무의미하게 보이는 검은 점을 찍고 있는 것 같아도, 그것이 승천하는 용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용안(화룡점정)'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방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힘들다는 것은 인정하되,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