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룸살롱 황제' 이경백(40)씨가 경찰 조직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한때는 경찰의 '비호' 덕에 유흥업계 최강자로 군림했던 이씨가 이제는 경찰의 공적(公敵)이 돼버렸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런데 이씨와 경찰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씨와 경찰, 검찰이 서로 뒤엉킨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민간인 사찰로 물의를 빚고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인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은 2007년 여름 이씨가 연루된 첩보를 입수한다. 이씨와 경찰관 오모 경위가 유착 관계에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사건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넘겨진다.
이씨와 오 경위가 내사를 받게 된 사연은 이렇다. 그해 3월 경찰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을 처리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와 홍영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사퇴를 하는 등 조직이 만신창이가 됐다. 당시 경찰 수뇌부는 김 회장 사건이 외부에 드러나는 과정에 이씨와 오 경위가 배후 역할을 했다고 의심했다. 오 경위는 김 회장 사건의 1차 수사 담당자였고 이씨는 폭행 사건이 벌어진 북창동 S클럽의 경쟁 업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조직을 피곤하게 만든 '괘씸죄'가 적용돼 오 경위와 이씨가 조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씨를 손 보러 나섰던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거꾸로 이씨가 쳐놓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수사관들이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업자들로부터 접대를 받았는데 이 정보가 이씨의 귀에 들어갔던 것. 당시 "강남 화류계 정보는 이경백으로 통한다"는 말이 돌 때였다.
경찰을 향한 이씨의 반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을 조사하던 수사팀을 포함해 특수수사과 직원들의 전국 유흥업소 지분 투자 현황이라는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당시만 해도 경찰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검찰은 이 자료를 경찰청에 주면서 내부 감찰을 주문했고, 그 결과 특수수사과 직원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더 이상 이씨를 건드리지 못하게 됐다. 더욱이 이씨의 업계 라이벌이자 오 경위와도 친분이 있던 김모씨의 경우 이씨보다 먼저 수사를 받았는데 세무조사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고 한다.
라이벌은 사라지고 자신을 쫓던 수사팀이 고꾸라지자 이씨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자금력과 로비력을 바탕으로 강남의 저가(低價) 룸살롱 시장을 평정해 나갔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경찰 고위 간부보다 실제 단속에 나서고 단속 정보를 틀어쥔 실무 경찰관에게 먼저 다가갔다"면서 "특별 단속을 해도 단속반 편성과 동시에 그 정보가 이씨에게 고스란히 들어갈 정도였다"고 했다. 그의 업소 운영 방식도 화제를 모았다. 일찍 오는 손님에게 가격을 할인해주는 '조조할인', 양주 2병 시키면 1병을 무료로 주는 '2+1 행사', 여종업원 대기실을 검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며 파트너를 고르는 '매직 미러 초이스'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룸살롱 업계 관계자는 "논현동 이씨 가게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새로 도입한 여종업원 선택 방법이라면서 보여주는데, 종업원 대기실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손님은 룸 안에서 대형 LCD 모니터를 통해 카메라를 당겨 피부 모공 상태까지 보면서 파트너를 고르는 '줌인 초이스'라는 것이었다. 이씨의 술집 운영 능력은 탁월했다"고 했다.
하지만 재작년 이씨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이씨 업소의 한 여종업원 측이 가게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팀장은 경찰대 1기 출신으로 검찰로부터 수사권 독립을 주장해오던 황운하 서울청 형사과장이었다. 황 과장은 이씨를 강하게 압박한 끝에 탈세 혐의로 이씨를 구속시켰다. 이씨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자기가 구속되면 검찰에서 경찰 관련 비리를 모두 불어버리겠다며 수사팀을 압박했다고 한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 63명이 이씨와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십 명의 경찰관들이 옷을 벗거나 징계를 받았으나, 당시 경찰의 타격은 크지 않았다. 조현오 당시 서울청장이 먼저 비위 경찰관 척결을 주장한 데다 검찰이 아니라 경찰 내부의 감찰 조사였기 때문에 언론에 알려지는 비위 내용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씨가 구속되면서 '룸살롱 제국'에 문제가 생겼다. '바지'사장들이 영업을 했지만 '황제'의 공백을 메울 순 없었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거 이씨의 물량과 서비스 공세에 숨죽여야 했던 경쟁업체들이 반격에 나섰다. 한 룸살롱 업주는 "상대업체를 죽이는 최고의 좋은 방법은 경찰에 불법 영업으로 신고하는 것이다. 과거엔 신고해도 이씨의 업소는 무사통과였지만 그가 없으니 사정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씨가 소유했던 업체들이 하나둘씩 경영난에 몰리기 시작했다. 업소 한 곳당 월 임대료가 3000만~5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그가 물어야 할 가게세만 매달 5억원 이상이었다고 한다.
구속 수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던 이씨가 가장 먼저 했던 일도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업소를 수습하는 것이었다. 룸살롱을 직접 돌면서 손님들을 맞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지명수배를 받게 됐고 작년 7월 검거돼 다시 수형생활을 하게 됐다. 현재 이씨의 업소는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명의가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룸살롱 업계 관계자는 "한때 13곳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씨의 채권자들이 업소를 모두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씨의 몰락 징후는 다른 부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자신에게 돈을 받아간 경찰들로부터 돈을 회수하고 있다는 것. 이씨는 경리 직원을 통해 경찰관들에게 면회 오라고 해서는 돈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룸살롱 업계 관계자는 "이씨가 재기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을 생각한다면 경찰에게 그렇게 못하는데 급해도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라고 했다.
그런 이씨의 움직임을 포착한 검찰이 지금 이씨를 상대로 경찰관들의 뇌물 비리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검찰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밀양에서 경찰이 검사를 고소한 데 대한 대항 카드로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면서 "탈세 혐의를 추가하겠다고 이씨를 압박해 경찰의 비리를 받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경 갈등 국면에서 본다면 검찰은 이미 이씨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조현오 경찰청장으로부터 2010년 수사가 미진했던 데 대해 대국민사과까지 받아냈다. 같은 사건에 대해 검찰이 밝혀내는 걸 경찰은 왜 수사하지 못했느냐는 여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사사건건 검찰과 맞서왔던 황운하 당시 형사과장(현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부실 수사 책임자로 궁지에 몰리게 된 것도 검찰의 '부수입'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는 자신을 몰락으로 이끈 황 과장에 대한 섭섭함이 있다. 그런 부분도 이번 수사에 조금 영향을 주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번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경찰이 전열을 정비해 반격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경찰에만 로비를 한 줄 아느냐. 소방서, 국세청은 기본이고 검찰에는 훨씬 많은 금액의 돈을 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